6·25전쟁 초기 평양으로 투입되는 미 공정대원이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공정대원들은 무장한 상태로 낙하산으로 공중 강하해 작전지역에 침투,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많다. 일반 보병을 경비행기에 태워 전선으로 공수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런 이례적인 작전을 맥스웰 테일러 미8군 사령관이 6·25 막바지 전투인 금성전투에서 선보였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그동안 줄기차게 내렸던 많은 비로 인해 금성천과 북한강 등 돌출부 일대의 모든 하계(河系)에는 물이 크게 불어 있었다. 중공군은 그 하천의 범람으로 보급에 더욱 큰 차질을 빚을 태세였다. 아군은 달랐다. 구름이 개면서 전폭기를 띄울 수 있었고, 경춘가도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실어 날랐던 아군의 보급물자와 장비·병력 등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미8군 사령관 맥스웰 테일러 장군은 포천의 이동에 와 있었다. 그곳에서 신규 병력으로 투입하는 11사단의 이동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소토고미에서 지프를 타고 말고개라는 곳을 넘어 이동으로 향했다. 테일러 장군과 작전 협의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1사단 투입 병력은 그전에 부대 이동을 시작해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이동에는 경비행장이 있었는데, 조종사 외에 5~6명이 타는 조그만 L-20 등 경비행기만이 뜨고 내릴 수 있었다. 당시 일반적인 생각으로 볼 때 그 경비행기에 보병 사단 병력을 실어 작전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나 테일러 장군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을 벌이고 있었다. 경비행기는 무장한 사단 병력들을 태우고 짧은 활주로를 날아올라 소토고미에 병력을 내린 뒤 다시 이동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경비행기 L - 20

 테일러 사령관의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그는 전선의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아 중공군에게 금성 돌출부의 전체를 내주고, 후방까지 밀린 뒤 휴전을 맞는다는 상황을 감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우직하게 경비행기를 동원해 사단 병력을 작전 지역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뻔히 알면서도 농담조의 시비를 걸었다. 그는 전임 제임스 밴플리트 사령관과는 다른 스타일이었다. 밴플리트는 한국에 동원 가능한 것을 모두 공급하려는 ‘전폭적 지원형’ 미군 지휘관이었지만, 테일러는 모든 것을 꼼꼼하게 따지는 ‘제한적 지원형’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한국 지휘관에게는 “미국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들어가는 것인데 함부로 줄 수는 없다”는 식의 핀잔을 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활주로 옆에 서 있던 그에게 “미국 국민의 혈세를 강조하던 분이 이렇게 경비행기로 사단 병력을 투입할 생각은 어떻게 했느냐”고 슬쩍 물었다. 그는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지금 이런 상황인데 그런 말을 왜 하느냐”면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내가 던진 조크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그는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잘 아는 명 지휘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101 공수사단을 이끌고 네덜란드 북부와 룩셈부르크 베스토뉴를 거쳐 독일을 공략한 야전의 전사(戰士)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현대전의 개념을 잘 알면서 이를 실전에 잘 활용하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신속한 장비 및 병력 보급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했으며, 실행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매우 든든했다. 미군은 대형 수송기가 뜨지 못하는 곳에서는 경비행기라도 띄워 병력을 실어 나를 후방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중공군은 하천에 불어난 장맛비로 인해 금성천 남부까지 넘어온 자국의 병력에 충분한 보급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자주 언급한 내용이지만, 현대전(現代戰)은 개별적인 전투 상황 관리에서 더 나아가 전선을 받쳐 줄 수 있는 병력과 화력, 물자 보급력을 갖춰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나는 금성 돌출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중공군과의 마지막 일전이 초반에 저들이 벌인 막대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후방의 지원 역량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확신했다.

 나는 그런 자신감 속에서 일단 중공군이 주춤거리는 기색을 보이는 시점을 역공(逆攻)의 기회로 잡았다. 이제는 그동안 쌓은 국군의 전투력과 그 뒤를 받쳐주는 미군의 막대한 물자를 활용해 적을 밀어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군의 저지선을 충분히 다진 다음에 대대적인 공세를 위한 대오(隊伍) 정비가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아군 전선의 옆과 옆을 다시 튼튼하게 이었다. 새로 전선에 투입한 11사단의 병력으로 아군 전선의 좌익(左翼)을 크게 보강했다. 그 서쪽으로 인접한 미군과의 틈새를 없애고, 옆으로 길게 늘어선 방어선의 위도(緯度)를 맞췄다. 적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아군이 서 있는 전선의 횡적(橫的)인 대오를 빈틈없이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전선의 우익(右翼)도 적군의 공세에 따라 불규칙하게 형성된 대오를 조정해 한 줄로 다시 맞췄다. 국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를 했으면서도 전열(戰列)을 신속히 되찾았다. 그런 역량이 그동안 거듭한 훈련과 교육으로 이미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중공군은 금성천을 넘어와 자신들이 빼앗은 고지를 중심으로 곳곳에 강력한 저항선을 설치한 상태였다. 그런 고지를 향해 국군은 힘찬 반격을 개시했다. 7월 15일과 16일에 걸쳐 국군은 주저항선을 발판으로 삼아 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전선 여러 곳에 솟아 있는 고지에서는 이를 빼앗기 위한 국군과 그곳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중공군의 공세와 반격이 간단(間斷)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국군은 새로 도착한 신규 병력과 강력한 물자 지원을 바탕으로 고지를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중공군도 결코 쉽게 고지를 내줄 수 없다는 각오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힘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아군의 공세가 더 집요했다. 중공군은 일부 빼앗긴 고지를 향해 강력한 포격으로 반격을 펼치면서 고지에 오른 국군을 다시 내몰고는 했으나, 국군은 물러선 뒤 다시 또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공세는 18일까지 이어졌다. 후방 보급력에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중공군은 그때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공군 공세로 내준 고지를 하나 둘씩 아군이 찾아오고 있었다. 전선은 점차 북상(北上)했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