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미 187공수전투연대가 C-36기를 타고 평안남도 숙천 상공에서 공중 강하하고 있다. 육로를 통해 북진하던 유엔군 선발대에 앞서 적 후방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미 187공수전투연대는 6·25 막바지 싸움인 금성 전투에서도 전선에 긴급 투입돼 아군을 돕는 소방수 역할로 이름이 높았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이튿날인 7월 14일이 되면서 전황(戰況)은 더 위험해지고 있었다. 전선의 작전을 지휘했던 미 8군은 일본에서 옮겨온 미 187 공수전투연대와 국군 11사단 등을 금성 돌출부 전선으로 전진 배치시키면서 중공군 공세를 막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그러나 한 번 밀린 전선이었다. 게다가 아군의 몇 배에 달하는 막대한 병력이 그 전선을 짓누르고 있었다.

 결코 만회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금성천을 내주고 국군은 남쪽으로 더 밀릴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그 다음으로 중공군이 노리는 곳은 남한의 유일한 수력발전소가 있는 화천댐일 것이다. 아울러 화천 저수지까지 내줄 경우 중부의 큰 도시인 춘천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었다.

 암담한 교전 상황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국군은 밀리면서도 끝까지 격렬한 저항을 펼치고는 있지만 전망은 아주 어두웠다. 빼앗겼던 진지를 다시 찾아오는 반격에서 일부 성공했으나 전체는 밀리고 또 밀리는 상황이었다.

 전투를 맞이하는 지휘관에게는 상승(up)과 하강(down)이 번갈아 찾아오게 마련이다. 적을 무찌르면서 앞으로 나갈 때의 상승 국면(局面)은 관리하기 쉽다. 자칫 범할 수도 있는 실수를 줄이면 그만이다. 한 번 등을 보인 적을 쫓아가 계속 타격하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관리가 힘들다. 강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적에게 거꾸로 등을 보여준 경우다. 전투 현장에서 쫓기는 형국(形局)에 내몰리면 아주 다급해지게 마련이다.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후퇴를 맞는다면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릴 수도 있다.

 당시의 금성 돌출부는 그런 하강의 큰 물줄기를 타고 밀리는 경우였다. 적어도 대구의 육군본부 작전 상황실에 앉아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전황을 보고 있던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아군의 저항선은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국면을 돌이킬 만한 커다란 승전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국군의 작은 저항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나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면서 계속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휴전이 곧 닥칠 상황에서 이렇게 금성 돌출부 전체를 내주고, 심지어는 화천 저수지까지 적에게 빼앗긴다면 큰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전투는 휴전을 맞는 아군과 적군에게는 커다란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었다.

 휴전 뒤 과거 3년 동안 벌어졌던 전쟁의 모든 성패(成敗)를 따질 때 금성 돌출부를 두고 벌인 싸움은 그 끝마무리에 해당하는 전투였다. 처음에 서울까지 내주고 낙동강 교두보에 몰렸다가 극적인 방어와 북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던 이 전쟁에서 우리는 중부 전선의 전략 요충을 크게 내주는 결정적인 패전을 막바지에 기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것은 치욕으로 끝을 맺는 전쟁이 될 수도 있었다.

 전략적으로도 화천 저수지를 내주고 춘천까지 적이 압박하도록 휴전선을 긋는다면 중대한 실책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한 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숨져 갔던 그 많은 국군 장병과 유엔군 병력의 영령(英靈)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근심과 우려가 더욱 깊어졌다. 그저 기다리면서 전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 8군 맥스웰 테일러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가 전화통에서 울리자 나는 “지금 상황이 매우 급해 보인다. 내가 도울 일은 없느냐”고 물었다. “지휘관은 놀라는 일이 없어야 한다(Commander never surprise)”는 전쟁 지휘 철학을 지닌 테일러 장군이기는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다소 지쳐 보였다.

 그도 이 전투가 매우 상징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이 땅에서의 전쟁을 맞이하는 지상군 사령관이었다. 미군 고위 지휘관들은 승리하지 못한 채 끝내는 전쟁을 매우 부끄럽게 여긴다. 미군은 싸움이 붙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점을 늘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 미군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가는 최고 엘리트 지휘관으로서 테일러 장군이 만일 금성 돌출부의 상징적인 전투에서 패한다면 심리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을 것이 뻔했다. 테일러 장군은 그런 점 때문에 금성 돌출부가 큰 위기에 빠졌던 그 당시에는 매우 커다란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 “아직 모든 상황을 점검 중이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만 말했다. 반격의 실마리를 잡아 전선을 밀고 올라갈 수도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은 눈치였다.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마음은 아주 어두웠다. 중공군의 공세를 전하는 작전 상황판의 표지물이 계속 오르내리고는 있었지만, 그들은 ‘국군의 반격’과 ‘중공군의 후퇴’를 말해주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긴 하루였다. 이제 국군의 퇴로(退路)를 걱정할 판이었다. 금성 돌출부의 왼쪽과 오른쪽 어깨를 뚫은 중공군의 기세는 벌써 돌출부 전선 남쪽의 국군 후방 저지선을 유린하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역시 제대로 후퇴하느냐의 여부였다.

 적군의 공세 앞에서도 군대의 역량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후방으로 후퇴해 반격의 기회를 잡는 게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서와 체계가 잡힌 후퇴가 필요했다. 그러나 금성 돌출부의 퇴로도 흔들릴 기미가 보였다. 이미 상정했던 돌출부의 간선 도로에도 양쪽 견부를 통해 우회하고 있던 중공군이 다가서고 있었다.

 전선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퇴로에 올라서 있는 국군이 더 크게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상황판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나는 관사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새벽 1시쯤이었을까. 전화통이 급하게 울렸다. 나는 거실로 나가 전화통을 들었다. 아주 다급한 목소리의 테일러 미 8군 사령관이었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