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문의 1일자 신년 공동사설에는 김정일의 2011년 통치 구상이 담겨 있다. 공개 연설을 회피해 온 그에게는 신년사인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년 7월) 이후 맞은 95년 새해부터 과거 중국의 인민일보 등 3개 기관지 공동 사설을 본떠 시정 방침을 제시해 왔다. 이번 공동 사설에 드러나거나 행간에 숨겨져 있는 북한의 2011년 남북 관계와 대내외 현안에 대한 복안과 특징을 짚어 본다.

① 대남 관계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예고했다. 북한은 A4용지 13쪽의 공동사설에서 2쪽 정도를 남북관계에 할애해 “대화와 협력사업 적극 추진”을 주장했다.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촉발된 남북 긴장의 책임을 대화 공세로 물타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2012년 대선을 겨냥한 남남 갈등 조장 등 북한의 개입이 노골화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그러면서도 군부에는 “멸적의 투지”를 강조하며 "모든 군인들을 펄펄나는 일당백 싸움꾼으로 준비시키라”고 주장했다. 사설이 “전쟁의 불집이 터지면 핵참화밖에 없다”고 한 것은 핵 위협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신년 사설에는 대남 비난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남조선 보수 당국은 전쟁 하수인, 반통일 대결 광신자”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거명 비난이 없었다. 대화·협력을 공언한 북한이 당국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수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기존의 논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북한도 남북관계에 대해 그렇게 크게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업무보고 때 “ 남북대화 추진”을 강조한 통일부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정상적 남북대화가 어려운 만큼 극비 접촉을 통한 남북관계 해법이 모색될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한다.  

이영종 기자

② 대외 관계  신년 공동사설의 대외 관계 언급은 짧았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전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입장, 의지에 변함이 없다. 자주·평화·친선 이념 밑에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 친선 협조관계를 발전시키겠다”가 거의 전부다. 대외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 “한반도 평화의 근본 문제는 조(북한)·미 사회 적대 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라며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입장을 적극 제기한 것과 다른 분위기다.

북한 수뇌부가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계산에 넣고 있다는 얘기다. 외교 소식통들은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이후 미·중 사이에 북핵 리스크를 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북한은 그 결과를 예의주시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폐기와 그 속에서의 한국 역할’을 강조한 것도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 중단 조짐이 뚜렷하고 한·미·일·중·러가 6자회담 재개 여건에 공감하면 남북 대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화 및 6자회담이 교차하면서 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③ 대내 문제  내치의 초점은 경제난 극복과 민심 잡기에 맞춰졌다. 북한이 내세우는 ‘2012년 강성대국 진입’ 준비와 김정은 후계체제 연착륙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사설에서 “경공업은 올해 총공격전의 주공전선”이라고 강조했다. 또 “농업전선은 인민생활 문제해결의 생명선”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경제문제를 사설 제목으로 등장시킨 데서도 절박감이 감지된다.

사설이 “민심은 고도로 안정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는 얘기다. 통일연구원은 분석자료에서 “지난해 사설에서 ‘강재가 나와야 쌀도 나오고 기계도 나온다’고 했던 북한이 올해는 ‘석탄이 꽝광 나와야 비료와 섬유도 쏟아지고 전기와 강재도 나온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돌려막기식 경제구호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설이 ‘자력갱생’과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관리원칙’을 강조하며 무역·수출 등 대외경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도 눈길을 끈다. 2009년 11월 화폐개혁 실패에 이어 지난해 초 김정일 특별지시로 설립한 조선대풍그룹의 외자유치 구상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충격 때문으로 보인다. 사설은 대신 지하자원 개발을 통한 ‘자금 확보’를 강조했다.

이영종·전수진 기자

김정은 공적으로 꼽는 CNC 또 강조
1만3229자 사설 … 눈길 끄는 언급들






올해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은 모두 1만3229자로 2000년대 들어 가장 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첫해인 1995년 공동사설부터 치면 양이 세 번째다. 올해보다 양이 많았던 96년(1만3504자), 97년(1만3470자)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어려움 극복을 위해 할 말이 많았던 해였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사설이 긴 것은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제시한 2012년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년 공동사설은 “우리 당의 사상은 공격사상이며, 당의 혁명방식도 공격방식이다” “무적필승의 군력을 세계의 면전에서 뚜렷이 보여주었다”고 지난해를 자평했다. 이는 대내 사업을 공세적으로 추진했다는 것과 더불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후계 문제에 대한 공식 언급은 없다. 다만 간접적인 표현이 등장해 관심이다. “현 시기 우리 당건설과 활동은 당대표자회 정신을 출발점으로 하여 전개되여야 하며 그것으로 일관되여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됐고, 사실상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북한이 김정은의 공적으로 꼽고 있는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컴퓨터수치제어장치)를 지난해에 이어 강조한 점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특히 “CNC기술의 패권을 틀어쥔 경험에 토대하여 모든 분야에서 세계가 도달한 과학기술 수준을 최단 기간 내에 뛰여넘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공업 제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도 했다. ‘CNC 기술의 패권’ ‘세계적 기술력’ 등의 언급은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면서 노력 동원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신년 공동사설이 지난해 김정일의 두 차례 방중을 언급한 것도 흥미롭다. 사설은 “(김정일의) 두 차례 중국방문은 전통적인 조·중 친선관계를 새로운 단계에 올려세우고 우리 혁명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 력사적인 장정이였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두 차례 대남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 중국의 외교적·경제적 지원이 중요했다는 점을 일러주는 것 같다.

  정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