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사망한 김양건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김영철 대남비서다. 한국 사람들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포 포격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영철은 군인 출신으로 드물게 대남비서를 맡았다. 군인 출신이 대남비서를 맡은 사람은 1968 년 1월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했던 1.21 사태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인 허봉학이 있었다. 
 
김영철은 혁명유가족과 고위층 자녀를 북한 엘리트로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으로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대장까지 오른 사람이다. 그는 2009년 2월 신설된 정찰총국장에 임명되면서 각종 대남·해외 공작업무를 지휘했다. 정찰총국은 노동당 소속의 작전부(침투 공작원 호송·안내 담당)과 35호실(해외·대남 정보수집 담당), 인민무력성 산하 정찰국 등 3개 기관이 통폐합되면서 만들어졌다.
 
김일성이 199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첫 총리회담인 남북고위급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북한 대표단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 김정우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 안병수(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연형묵 총리, 김일성, 김광진 조선인민군 대장, 윤기복 대남비서, 백남준(백남순) 정무원 참사실장, 김영철 조선인민군 소장. [사진 노동신문]

김일성이 199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첫 총리회담인 남북고위급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북한 대표단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 김정우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 안병수(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연형묵 총리, 김일성, 김광진 조선인민군 대장, 윤기복 대남비서, 백남준(백남순) 정무원 참사실장, 김영철 조선인민군 소장. [사진 노동신문]

이런 경력을 가진 김영철이 대남 공작과 함께 대화를 주도하는 대남비서로 올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허담·김용순·김양건처럼 외무성이나 당 국제부 출신 가운데 대남비서를 맡거나 대남 비서가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의 내부에서 승진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군인 출신을 그 자리에 앉혔다. 통일전선부 내부 사람들도 예상 밖 인사였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남북관계의 긴장되면서 김정은이 군인 출신을 임명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철과 회담을 했던 군 장성들은 “군인 이미지와 달리 남북군사회담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회담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 점을 김정은이 평가했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철은 군인 출신으로서 보기 드물게 남북 회담이 자주 참석했다. 1990년 9월 서울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첫 총리회담인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에 참석했다.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김영철의 첫인상을 “군복 차림의 젊은 김영철 인민군 소장은 날카로운 눈매에 찬바람이 감도는 쌀쌀한 태도로 아무 말 없이 손만 내밀었다”고 적었다. 당시 김영철은 44살이었고, 연형묵 전 총리를 수행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은 이후 7차례 열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을 결실로 맺었다.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를 맡았고 2007년 제2차 남북국방장관 회담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김영철은 2016년 초 대남비서를 맡은 뒤 경사를 맞았다. 그해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다. 당 서열 12위다. 하지만 대남비서가 정찰총국장보다 쏠쏠한 ‘재미’가 없는 자리다. 남북관계가 악화된데다 대남비서 산하의 조직들이 이미 2009년 정찰총국으로 넘어가 역할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에서 둘째)이 지난해 2월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 당 인민군위원회 연합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당시 주석단에는 정찰총국장에서 대남비서로 자리를 옮긴 김영철(김정은 오른쪽)이 인민복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에서 둘째)이 지난해 2월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 당 인민군위원회 연합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당시 주석단에는 정찰총국장에서 대남비서로 자리를 옮긴 김영철(김정은 오른쪽)이 인민복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노동신문]

이에 따라 그는 정찰총국 5국(대남 및 국외정보 수집 업무)과 정찰총국 산하의 외화벌이 무역회사 청봉무역을 통일전선부로 이관하려고 했다. 전 정찰총국장의 힘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이를 월권행위로 규정하고 김정은에게 “김영철이 개인 권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영철은 이로 인해 지난해 7월 약 한 달간 혁명화 교육(지방 공장이나 농장에서 노동을 하며 정신교육을 받는 처벌)을 받고 복귀했다.
 
김영철은 통일전선부를 군인 출신인 자신의 심복들로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다. 인민군 중장(별 둘)이다. 남북장성급 군사회담과 남북군사실무회담 북측 대표를 맡아 남북 군사회담에 자주 얼굴을 비쳤던 사람이다. 이선권 외에도 군인 출신들을 통일전선부로 데리고 오는 바람에 개인 권력을 조장한다고 인식되기도 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