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수염을 기르거나 한복을 입은 남성을 찾아볼 수 없다. 김일성 시대에 ‘봉건주의 유습 타파’를 외치며 조선을 봉건왕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옛말 할아버지’다. 무려 30년 넘게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공훈 배우 서영광. 길게 기른 수염과 한복을 입은 그의 행색은 영락없는 조선 시대 양반이다.
북한 조선중앙TV 어린이 프로그램 '옛말 할아버지'의 진행자 공훈배우 서영광씨. 북한에서 흔치않은 한복차림이 인상적이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북한 조선중앙TV 어린이 프로그램 '옛말 할아버지'의 진행자 공훈배우 서영광씨. 북한에서 흔치않은 한복차림이 인상적이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조선중앙TV의 ‘옛말 할아버지’ 프로그램은 그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1주일에 1회 어린이 시간대인 오후 5~6시 사이에 전파를 탄다. 그런데 30년을 이어온 이 할아버지의 교육 방식은 보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반미·반제·반봉건이나 김씨 일가 우상화 등 올바른 아동 인성 발달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다.  
지난 9월 30일 방송된 '옛말 할아버지-패전장군의 말로'편에는 어린이들이 그린 목 잘린 미군 그림이 전파를 탔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지난 9월 30일 방송된 '옛말 할아버지-패전장군의 말로'편에는 어린이들이 그린 목 잘린 미군 그림이 전파를 탔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지난 9월 30일 방송된 ‘패전장군의 말로’편에는 출연 아동들이 그린 불타는 미국 지도와 목 잘린 미군 그림이 등장한다. 그는 “노래를 불러도 미제 승냥이를 때려 부수는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려도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어린 학생들을 칭찬했다. 이어 등장한 사리원시 영광소학교에 다니는 김태강 어린이가 “미국에 보내는 죽음의 로켓 선물 보따리, 미친개 트럼프 어서 받으라”며 과격한 자작시를 읊자 그는 손뼉을 치며 흡족해했다. 어린이 TV 프로그램의 진행자의 행동으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지난 9월 30일 방송된 '옛말 할아버지-패전장군의 말로'편에 등장한 불타는 미국 지도.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지난 9월 30일 방송된 '옛말 할아버지-패전장군의 말로'편에 등장한 불타는 미국 지도.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집권 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각종 조선소년단 행사에 참석하거나 전국 각지에 애육·보육원과 학생소년궁전을 건설하는 등 후대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김정은이 육성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애로운 어버이의 모습을 보여줘 30대 초반의 미숙한 지도자 이미지를 벗음과 동시에 아이들이 미래 충성세력이 되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를 위해 아동 대상으로 치밀한 정치 선전·선동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도를 넘은 반교육적 행태 아래서 북한 어린이들의 인성은 멍들어 가고 있다.
 
 
안정호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an.ju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