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1일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국무위원회는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김정일 시대의 국가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를 확대·개편한 조직이다. 김정은 시대의 최고권력기관인 셈이다. 김정은은 노동당 위원장·국무위원장·최고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1일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1일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이 발표한 성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완전파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김정은은 성명에서 트럼프에게 대놓고 ‘불망나니’ ‘늙다리 미치광이’ ‘깡패’ 등으로 퍼부었다. 김정은이 이번처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성명은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는 없었다. 김씨 3부자는 새해 첫날 신년사·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해 왔다.
 
김정은이 왜 직접 나섰을까? 바꿔 질문하면 김정은이 직접 나설 정도였는가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완전파괴’의 말에 극도의 부담과 위압감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성명을 보면 사족이 많고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트럼프에게 권고하건대’ 등의 표현은 과거 김정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은 메시지의 파괴력을 떨어뜨린다.   
 
둘째,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했다.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의 간접적인 표현 방식이다. 그동안 북한 지도자들은 처해있는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하지 않았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이었다. 이번 성명에서 김정은은 “세계 최대의 공식외교 무대인 만큼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가 이전처럼 자기 사무실에서 즉흥적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던 것과는 다소 구별되는 틀에 박힌 준비된 발언이나 할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밝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대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셋째, 자신은 이성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줬다.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서 이런 자세는 공포에 대한 방증이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 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 단행을 신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신중히 고려’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이런 ‘말폭탄 대결’로 ‘장사꾼’으로서의 절묘한 계산을 하고 있다. 김정은과 아슬아슬한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1석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PA=연합뉴스]

첫째,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 미국은 지난 21일 북한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제3국의 기업과 금융기관·개인 등에 대해 미국과의 거래를 차단하는 ‘세컨더리 제재’을 발표했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해외 거래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은행들이 결제자금 통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 세컨더리 제재의 표적은 중국 은행들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중국의 국영은행들이 여전히 북한과 거래하고 있다”며 자산 3조4700억 달러(약 3925조원) 세계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을 포함해 12개 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리라고 재무부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미국은 이미 중국을 향해 ‘통상법 301조(관세 인상, 수입량 제한 등)’를 꺼내들어 중국을 압박하려고 하고 있다. ·
 
둘째, 국정수행 지지율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미국 정치 분야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인 라스무센 리포트는 지난달 12일 트럼프의 지지율이 전번주 39% 보다 6% 포인트 상승한 4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라스무센 리포트는 “트럼프의 대북 강경 대응 발언과 군사행동 제안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셋째, 한국·일본에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트럼프는 지난 4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정교한 군사 장비들을 대량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썼다. 백악관은 이에 앞서 지난 1일에도 한·미 정상의 통화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군사 장비에 대한 한국의 계획된 구매를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장사꾼’출신답게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방법으로 절묘한 계산을 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에 대한 우려로 미국 정치권 안팎에서 트럼프의 표현이 과격하다고 지적하며 공세의 수위를 낮출 것을 주문하지만 트럼프는 고개를 흔든다. 그는 김정은 같은 사람은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기는 ‘치킨 게임’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