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은 남북관계에 뜨거운 감자다. 북녘 동포를 돕자는 데 이견이 없겠지만 민생을 팽개친 북한 정권을 보면 찜찜한 구석이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으며 ‘서울 핵 불바다’까지 위협하자 우리 사회는 더 냉담해졌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800만 달러 규모 지원을 하겠다며 운을 뗐다. 비판여론에 통일부는 주춤하는 제스처를 하지만 굽히지 않을 기세다. 대북지원을 둘러싼 논란과 명암을 짚어본다.
  
제주 감귤을 북한에 보내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윤곽을 드러낸 1999년 초다. 이후 10여 년간 북송된 물량은 감귤 4만8328t, 당근 1만8100t으로 2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북한 주민에게 비타민을 보충해 주고, 따뜻한 남녘의 풍미를 전달하는 뜻깊은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상 징후가 대북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감귤 대부분이 김정일 충성유도용 선물로, 당근은 노동당 간부를 위한 식자재와 주스 제조에 쓰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 초 감귤 대북지원은 중단됐다.
 
감귤 북송선을 멈춰 세운 건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이다. 제주 출신인 그도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대북지원 역사는 전용(轉用), 즉 ‘빼돌리기’로 귀결된다. 한국과 국제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호소해 놓고, 챙긴 물량은 군부나 노동당이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대북 식량지원이 자리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쌀 30만t과 옥수수 20만t을 보낸 걸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연간 40만~50만t의 쌀을 북한에 보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군부 주도의 식량 빼돌리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다. 지원된 쌀이 군용트럭에 실려 부대로 들어가는 정황이 첩보위성 등을 통해 확인됐고, 최전방에서는 진지 구축에 남한 쌀 포대가 쓰인 장면이 관측됐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숨겼다. 눈치를 보던 국방부는 보수 정부가 집권한 이후에야 관련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엄밀히 말하면 쌀 북송은 인도적 지원이라기보다 식량차관 형태였다. 10년 거치 20년 상환에 연리 1%의 조건으로 남북 당국 간 계약이 이뤄졌다. 당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에 자본주의를 학습시키고 국제사회의 차관 제공 방식에 익숙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모두 240만t으로 40㎏짜리 포대 6000만 개 분량에 이른다. 7억2000만 달러의 비용을 떼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당국자는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첫 상환기한인 2012년이 되자 북한은 청구서 수령조차 거부했다.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용 자재·장비와 경공업 원료 등을 포함해 모두 9억3060만 달러(약 1조521억원)의 국고가 사실상 손실을 봤는데 책임지겠다는 당국자는 없다. 자신들의 급여나 연금이라면 이렇게 퍼주거나 떼인 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북지원의 출발은 긴급구호 성격을 띠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을 휩쓴 대홍수는 사상 최악의 기근 사태를 초래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비롯한 탈북 고위 인사들이 “주민 200만~300만 명이 죽었다”(한·미 정보당국은 46만 명 사망으로 판단)고 증언한 참혹한 재앙이다. 당시 옥수수 5만t을 챙기려 베이징 남북 적십자회담에 나온 북측 인사는 “내가 이걸 얻어가지 못하면 평양 공항에 내릴 수 없소”라며 남측 대표단에 읍소할 정도로 절박했다.
 
하지만 대북지원이 20년 넘게 이어지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대북지원 단체 관계자는 “북한의 자구노력 등이 없이 유사한 지원 패턴이 되풀이되면서 기부자가 피로감을 느끼는 이른바 ‘도너 파티그(donor fatigue)’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 정부나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는커녕 핵·미사일 도발과 “남조선을 타고 앉겠다”는 호전적 행보를 하는 북한 권력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위를 열어 800만 달러(약 90억5120만원) 규모 대북지원을 결정한다. 세계식량계획(WFP)에 450만 달러, 유엔아동기금(UNICEF)에 350만 달러를 지원하는데 임산부·아동 지원에 쓰인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핵·미사일 도발 국면에 갑작스레 꺼낸 대북지원 카드는 최악이다. 북한이 추석(10월 4일) 이산상봉 제안까지 걷어찬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비판이 일자 통일부는 “지원 결정만 해 놓고 집행시기는 여건을 보며 하겠다”는 군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여론몰이에 공을 들인다. 유엔이 2500만 북한 인구 중 1800만 명을 식량부족 취약 인구로 규정했다는 통계치도 제시했다. 대북제재를 훼손하는 게 아니며, 북한의 전용 가능성도 없다는 문답자료도 배포했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드러난다. 이전 정부 때 대북지원보다 제재에 무게를 싣던 브리핑을 하다 갑작스레 말바꾸기를 한 때문이다. 서두르다 보니 부처 간 엇박자도 냈다. 대북지원 시점을 두고 통일부와 국방부가 신경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도탄에 빠진 동포를 돕자는 데 어깃장을 놓긴 쉽지 않다. 자칫 피도 눈물도 없는 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세습독재는 밉지만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는 인도주의 활동가의 입장은 본분에 충실하다. 하지만 정책 당국자는 달라야 한다. 줄 때와 주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수다. 온정주의와 무전략으로 접근하다간 낭패를 본다. 주민들의 궁핍한 삶을 볼모로 대남공세에 집착하는 북한 정권의 속성을 꿰뚫어본다면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남측의 지원은 절대 받지 않겠다고 북한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밀어붙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칫 “우리의 핵 보유에 질겁해 남조선이 조공(朝貢)을 바치는 것”이란 북한 선전에 자리를 깔아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대북지원 물품의 전용 문제도 어물쩍 넘겨선 안 된다. 복지시설 원장이 기부금을 빼돌리고 학대를 일삼는데도 무작정 지원하자는 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을 지렛대로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낡은 생각은 접었으면 한다. 10년 가까이 와신상담하며 집권플랜을 짜왔을 현 정부 대북·안보라인의 대북접근 로드맵이 이 정도라면 실망스럽다. 낡은 레코드판으로는 창의적 대북정책을 내놓지 못한다. 달라진 김정은 체제의 북한, 포악해진 최고지도자란 대북 인지 코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민생을 팽개친 채 핵·미사일 폭주를 거듭하는 북한 집권층만 살찌우는 건 ‘타락천사(Fallen Angels)’의 길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