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북핵 야심이 폭주기관차를 탔다. 6차 핵실험의 여진이 채 그치지 않은 함북 풍계리에선 추가 도발 움직임이 포착됐다. 병기고에 은밀히 숨겨 둬야 할 핵탄두를 최고지도자가 만지작거리는 전대미문의 광경이 북한 TV로 공개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거리 발사도 임박 징후가 나타났다. 잇따른 도발 행보에 대한민국은 휘청거리고 있다. 김정은이 탄 북핵 열차가 지나온 노정을 짚어보고, 대응책을 분석해본다.
 
노무현 대통령 급서(急逝)는 충격이었다. 그의 동지이자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에겐 엄청난 슬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곧이어 또 하나의 파동이 겹쳤다. 서거 이틀 뒤인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2차)의 파트너이자 누구보다 북한과의 대화와 관계 진전에 애착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은 고인이다.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주(喪主) 격인 입장에서 대놓고 분노를 표하기는 어려웠지만, 당시 북한 정권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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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06년 10월 9일 울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 프로그램 의혹’이나 ‘평양 정권의 블러핑(bluffing·허세나 과장)’ 정도로 여기던 북핵 이슈가 실체적 위협으로 다가온 순간이다. 임기 4년 차 대통령에겐 안보 리더십의 위기이기도 했다. 북핵 실험의 책임을 물어 핵심 대북 참모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읍참마속해야 했다. ‘핵 보유는 억제 수단’이란 북한 주장을 두고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2004년 11월)는 입장을 보인 노 대통령은 핵실험으로 더 거센 여론 비판에 직면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비서실장으로 직을 바꾸며 핵실험 상황을 목도한 문재인에게 북핵은 트라우마였다.
 
그런 문 대통령에게 북핵이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도 불청객이다. 5월 취임 직후 탄도미사일 도발로 정세를 격랑에 휩싸이게 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번엔 핵실험 버튼을 눌렀다. 핵과 투발수단(미사일) 결합을 통한 현존하는 위협으로 북핵이 성큼 다가선 것이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꼬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 정권에 깐깐했던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 동안의 대북 적폐를 청산하는 건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이 새 정부에 전향적 태도로 나올 것이란 기대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베를린 대북 제의와 그 후속 조치인 군사·적십자회담 제안을 깔아뭉갰다. 문 대통령을 향해 ‘남조선 집권자’ 운운하며 막말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말 서해 연평도 점령 훈련을 참관하며 “남조선을 타고 앉으라”는 호전적 발언을 쏟아냈다. ‘대화’에 방점을 두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없어 보였다.
 
6차 북핵 도발은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속 레드라인(red-line·한계선)이 깊숙하게 침범당했음을 보여줬다. 핵실험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문 대통령은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실망감의 표현이다. 지난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에 청와대와 정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문 대통령이 ‘분노’를 말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의 후속 조치는 발 빠르다. 청와대는 “당분간 대화는 어려울 것”이란 방침을 내비치며 제재와 응징에 무게를 실었다. 우리 군 독자로 북한 핵심 시설 정밀타격을 겨냥한 실사격 훈련도 벌였다. 국방부는 올해 안에 대북 ‘참수(斬首)부대’(특수임무여단)를 창설한다고 밝혔다. 유사시 평양에 진입해 김정은과 전쟁 지도부를 제거하는 임무다. 5일 통일부의 국회 외통위 현안보고에는 ‘대화’란 단어가 아예 빠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와 그 구성원의 몸에는 김대중 정부 시기 첫선을 보인 대북 햇볕정책의 DNA가 깊이 녹아 있다.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화해 협력·교류에 절대가치를 둔다. 그런 생각은 대북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북관계 기류나 정세의 급박성에 맞춰 탄력 있게 변화하지 않는 교조주의적 대북 인식은 곤란하다. 북한의 핵 도발과 미사일 위협에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가슴 졸인다. 이런 목소리를 외면하다간 집권 초 국정 동력의 상당 부분을 안보 리스크에 허비할 공산이 크다.
 
정치권이 코앞에 닥친 안보 위기를 두고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하는 건 볼썽사납다. 국회 규탄 결의안을 턱걸이 표결로 겨우 처리해 놓고 뒤편에서는 말싸움이 한창이다. “도발을 묵과 않겠다”는 대통령의 고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당 대표는 힘 빼기식 대화 타령으로 논란을 빚었다. 대북특사는 함부로 꺼내 들 카드가 아니다. “받아야 특사”란 말이 있다. 북한이 거부하면 망신만 당하고, 후유증은 더 크다. “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5000만 국민이 북핵 인질이 됐다”는 보수 야당 대표의 발언도 과하다. 지난 9년 동안 집권 여당으로서 얼마나 북핵 해결에 노력했는지 자성하는 게 우선이다.
 
북핵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다가온 게 아니다. 어쩌면 북한이 작정했던 시간표대로 도착했을 수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초 핵 의혹이 불거지자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국제사회를 기만했다. 물증이 드러나자 “평화적 핵 동력(원자력 발전)”이라고 은폐했다. 그리고 마침내 ‘핵보유국’을 주장하며 서울과 워싱턴을 핵 불바다로 만들겠다 위협한다. 카멜레온 같은 위장막을 걷어내고 도발 본색을 드러냈다. 민낯의 북한 정권을 보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을 두고 “어처구니없는 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 대선후보 시절 했던, “6차 실험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란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상황은 꽤 절망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북한을 다뤄온 베테랑 대북 전문가들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말의 힘을 믿는다. 김정은의 북핵과 미사일 폭주는 앞으로도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그가 거쳐온 간이역을 돌아보면 곳곳에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멈춰 세울 수 없었을까 하는 회한이다. 하지만 후회와 원망,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반도 정세의 조타수와 우리 대북정책의 채점관 노릇을 북한에 맡길 순 없다. 8000만 우리 민족의 운명을 김정은에게 담보 잡히는 건 더더욱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견결하게 북한의 도발에 맞서길 기대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