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마침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9월의 첫 주말인 3일 함북 길주군 풍계리 지하 핵 실험장에서 6차 핵 실험 버튼을 누른 것이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4형' 장착하기 위한 수소탄 실험임을 분명히 했다. 에지난해 9.9절(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당일 5차 핵 실험을 실시한지 일년만의 핵 도발 감행이다. 이에따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로 긴장파고가 거셌던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최고의 위기로 치닫게 됐다.
 
이번 6차 핵 실험은 김정은이 북한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한지 하룻만에 이뤄졌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3일 새벽 6시께 보도에서 "김정은이 연구소를 방문해 '핵무기 병기화' 실태에 대한 종합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의 보도가 나온 지 6시간 정도 지난 후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감시망에는 길주지역에서 규모 5.6의 인공지진이 발생한 사실이 포착됐고,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 사실을 알리는 등 북핵 실험 정황이 드러났다. 북한은 오후 3시30분(평양시간 오후3시) '중대보도'를 통해 이날 오후 12시30분(평양시간 낮 12시) 핵 실험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핵탄두를 살펴보고 있다. 뒷편 설명판에 ICBM급인 '화성-14형 핵탄두(수소탄)'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핵탄두를 살펴보고 있다. 뒷편 설명판에 ICBM급인 '화성-14형 핵탄두(수소탄)'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조선중앙통신]

 
이번 도발은 첫째, 김정은의 관심이 다시 핵 무기 쪽으로 쏠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마감단계'를 언급한 이후 무려 13차례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긴장 수위를 올려왔다. 7월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수준의 ICBM인 '화성-14형'을 두 차례 시험발사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령 괌도를 포위사격하겠다는 위협까지 쏟아냈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이용해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시험발사로 괌 타격 능력을 갖췄음을 드러내려했다. 
 

김정은이 지난 4월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에서 선보인 다양한 미사일을 대부분 시험발사를 통해 과시한만큼 이제 다시 핵무기 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핵 무기의 완성과 함께 투발수단인 미사일의 능력을 결합시킬 수 있는 단계에 하루빨리 완전하게 접어들겠다는 계산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과정에서 북한이 무시당했던데서 벗어나 모처럼 미국과 국제사회의 메인이슈로 북한 문제를 끌어올린 호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복안일 수도 있다. 미국과 벼랑끝까지 가겠다는 신호탄이란 얘기다.
 
김정은의 핵무기연구소 방문소식을 전한 3일자 노동신문 1면.[노동신문 PDF 캡처]

김정은의 핵무기연구소 방문소식을 전한 3일자 노동신문 1면.[노동신문 PDF 캡처]

 
둘째는 핵 무기 개발을 완성하기 위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이번 6차 핵 실험에 앞서 공개한 탄두는 수소탄이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김정은이 참관한 탄두모형 뒷편으로 '화성-14형 핵탄두(수소탄)'이란 설명판이 그림과 함께 붙어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ICBM급 화성-14형에 탑재할 수 있는 수소탄 탄두라는 점을 위협하려 의도적으로 이런 시각물을 김정은 옆에 세워두고 선전매체를 통해 외부에까지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하룻만에 핵 실험이 전격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김정일이 3월 은색 구형의 핵탄두 모형을 참관한 사실이 공개된 이후 5차 핵실험까지 6개월의 시간을 뒀다. 김정은은 이번 핵무기연구소 방문에서 핵 실험이 임박했다는 점을 암시하는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북 군사전문가들조차 "당장 이번에 핵실험을 하기 보다는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북한은 수소탄 모형 공개와 거의 동시에 핵 실험 버튼을 누르는 전광석화식 핵 도발을 감행해 충격효과를 더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핵 실험 준비를 맞춰놓고 핵무기연구소 방문 일정을 공개하는 쇼를 벌여 국제사회를 기만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셋째는 북한의 핵 위협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이번에 실물모형을 참관한 수소탄과 관련해 "핵탄위력을 타격대상에 따라 수십kt급으로부터 수백kt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수소탄은 거대한 살상파괴력을 발휘할뿐아니라 전략적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EMP 공격까지 가할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설명했다. 북한 주장대로 소형화하고 다종화된 핵 보유와 이를 투발할 미사일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한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미군 등 전략적 목표를 하나하나 관철해 나가려는 수단을 착착 보유해나가려는 행보라는 의미다.
 

 
지난해 3월 김정은이 핵탄두를 살펴보는 장면을 보도한 노동신문.[노동신문 캡처]

지난해 3월 김정은이 핵탄두를 살펴보는 장면을 보도한 노동신문.[노동신문 캡처]

 
 
김정은이 9월 초에 맞춰 6차 핵 도발을 감행한 건 최근의 한반도 정세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한·미 합동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끝났다는 점에서 다시 도발적 행보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또 한·미 양국 간에 우리 군이 보유한 탄도미사일의 탄두 최대 중량을 현재 500㎏에서 1t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이 가시화 하고 있는 시점에서 불만을 표시한 성격도 있다. 핵 도발이란 충격파를 던져 한·미 공조 움직임의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대북 군사타격 가능성을 핵 위협으로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권수립 기념일에 이어 10월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 등 내부 일정을 고려해 핵 실험 카드를 꺼내듦으로써 체제결속을 꾀하는데 활용하겠다느 의도도 엿보인다. 
 
북한의 이번 도발로 문재인 정부는 또 한번 대북문제로 코너에 몰리는 형국이 됐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대화 복원에 방점을 뒀다. 7월 초 베를린 선언과 이후 정부이 대북제안을 통해서는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 회담 재개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 도발로 응수했고 우리 제안에는 일언반구 답이 없었다. 유화적 대북접근에 대한 비판이 일었지만 청와대와 통일부는 북한과의 대화복원 쪽에 치중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핵 실험이란 메가톤급 도발사태에 직면함으로써 대북노선의 유지가 어려울 정도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제 대북유화 노선에서 당장 전환하느냐 기존 입장을 고수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한 김정은이 수소탄 탄두 모형앞에서 연구소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한 김정은이 수소탄 탄두 모형앞에서 연구소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북한의 도발 위협 징후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능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감시기구나 국내외 전문가들이 북한의 추가 핵 실험 가능성을 제기하고, 풍계리 핵 실험장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부처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핵 준비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참석했던 정보위원들을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2~3번 갱도에서 핵 실험 준비가 완료됐다"는 정황이 전해지자 국정원은 "현 단계는 '핵실험 준비완료'가 아니라 '핵실험 가능상태 유지' 수준"이라는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국민들이 핵 위협에 노출될 위기상황이 임박했는데도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살피기에 급급해 정보판단을 평가절하하는데 매달렸다는 비판이 나온다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