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에 먹구름을 몰고 온 북한의 도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괌 타격과 ‘서울 불바다’ 위협을 쏟아내더니 어제는 평양 군부가 ‘징벌의 불소나기’ 운운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분풀이다. 김정은 정권이 쏟아내는 대남·대미 비난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격앙된 감정과 조롱, 과대망상이 두드러진다. 김일성·김정일 때의 치밀한 통일전술이나 대미전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김정은의 공개 발언과 자료 등을 통해 그 심리 세계를 파헤쳐 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건 10대 시절이다. 당시 공립학교 같은 반에 ‘성미’라는 또래 여학생이 있었다. ‘박운’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은 유일한 한국인 친구인 이 여학생에게 관심이 있었다. 어느 날 학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성미의 뒤편으로 김정은이 다가왔다. 한국말로 “내가 밀어줄까”라고 말하자 성미는 “아니!”라고 답했다. 김정은은 “괜찮아. 내가 밀어줄게”라며 굽히지 않았다. 그녀가 “하지 말라고!”라며 저리 가라 소리치자 김정은은 분노를 삭이며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섰다고 한다. 부시 2기 정부 때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국장을 지낸 빅터 차(Victor Cha)는 성미라는 여학생을 면담해 접한 사연을 저서 『The Impossible State』(불가사의한 국가, 2012)에 담았다. 성미의 가족은 김정은에게 부모의 존재를 묻자 “우리 엄마, 아빠 여기 없어”라며 심한 북한 억양으로 퉁명스럽게 답한 것으로 기억했다. 존칭을 쓰지 않는 그의 말투 때문에 ‘나쁜 아이’로 보게 됐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런 전언은 성장기 김정은의 심성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에피소드다. 평양으로 돌아간 이후 행적은 김정일 패밀리의 요리사였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70)를 통해 일부 알려졌다. 형 정철과 팀 대항 농구경기를 즐겼는데 게임이 끝나면 승패 요인을 분석하는 모임을 하는 등 치밀한 승부 기질을 보였다는 얘기다. 팀원들과 그저 ‘수고했다’는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는 형과 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생각을 엿볼 말과 행동의 단서는 한동안 흘러나오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막내아들 김정은을 낙점하면서 더욱 베일에 싸여버렸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공개 발언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건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이다. 할아버지 김일성(1994년 사망) 출생 100주년 공개 연설에서 그는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는 인상 깊은 ‘약속’을 했다. 그때만 해도 민생 챙기기 노선으로의 전환이나 전향적 대남·대미 정책에 대한 기대가 안팎에서 나왔다. 서구 유학파인 김정은이 할아버지·아버지의 노선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그러나 김정은이 선대(先代) 지도자 뺨치는 호전적 언사로 실망을 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3월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를 시찰하며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리라”는 등 거친 언사를 토했다.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는 섬뜩한 말도 나왔다. 지난해 말 한국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막말의 극단을 보여줬다. 김정은은 군부대를 방문해 “남조선 것들 쓸어버려라”고 했다. 과거 ‘남조선 집권 세력’ 또는 ‘군부 호전광’ 등으로 도발 대상을 제한하던 데서 벗어나 아예 대한민국을 뭉뚱그려 멸절(滅?)의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평양 근교에 청와대 모형 건물을 짓고 북한군 대남 특수부대의 타격훈련을 벌인 걸 두고는 “대남 열패감에 치기 어린 장면을 연출한 것”이란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일성 시기인 1968년 미수에 그쳤던 청와대 습격(1·21 사태)의 추억 더듬기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대미인식은 한마디로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으로 압축된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 제국주의의 대북 고립 압살 책동’으로 북한 체제가 지난 7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과 궁핍을 면키 어렵게 됐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나 김일성 유일 지배의 폐해는 낄 틈이 없다. 미국의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다. 집권 5년 넘게 핵·미사일 도발에 올인하며 내부 성장동력 대부분을 갉아먹은 김정은 통치의 정당성만이 찬양된다. “미 본토도 손아귀에 넣게 됐다”는 김정은의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김정은의 심리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축은 통치 리더십과 관련된다. 그는 27세이던 2011년 말 김정일 사망으로 권좌에 올랐다. 후계자 시절 ‘청년대장’으로 불리던 김정은의 어린 나이는 ‘미숙한 지도자’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차용한 스타일도 시도했다. 노동당과 군부 고위직을 롤러코스터식 인사와 숙청으로 주물러 봤지만 약발은 강하지 않았다. 급기야 2013년 말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앞에서는 복종하는 척하며 뱃속으로 배신을 꿈꾼다는 면종복배(面從腹背)가 사형 판결문에 등장한 건 ‘어리다고 깔보지 말라’는 김정은의 경고였다.
 
요즘 관영 선전매체가 드러내는 김정은의 이미지는 한껏 부풀려져 있다. 마치 국제 정세를 쥐락펴락하는 형국으로 선전된다. 이런 프레임에 갇혀 평양 권력과 최고지도자를 평가하는 착시현상도 일각에서 나타난다. 김정은이 한·미 대북정책의 채점자인 양 여기는 저명한 학자·전문가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심리를 꿰뚫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기에는 대남 열패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있다. 밤마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를 뒤져 보며 남한 사회의 발전상에 좌절하는 장면이다. 반미와 자주·주체의 기치는 몰락의 길을 걷는데, 자신들이 ‘미제 식민지’라 혐오하는 남한은 경제발전과 번영을 일궈 가는 패러독스는 절망감 자체다. “남조선이 발편잠을 못 자게 할 것”이란 김정은의 말에 증오가 가득한 이유다. 집권 6년 차에 접어들고도 해외 방문은커녕 시진핑·푸틴과의 정상회담조차 못한 고립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카의 손에 불귀의 객이 된 장성택의 유령이 한밤 관저를 맴도는 건 악몽이다. 측근의 배반을 두려워하는 김정은에게 불면의 밤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여 년 전 스위스의 어느 놀이터에서 남조선 소녀의 그네를 밀쳐버린 김정은은 지금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벼랑 끝에 선 그는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세계를 겁박하고 있다. 33세 청년 지도자가 다다르게 될 좌절의 결말이 파국보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길 기대해 본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