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요즘 전쟁 전야다. 김일성광장 10만 군중집회와 반미시위, 입대 탄원이 이어진다. 마치 미국과 핵전쟁을 불사한 끝장 대결이라도 벌일 판이다. 조선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괌(Guam)을 타격하겠다며 군부를 채근해 놓았지만 막상 엄두가 나지 않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꼬리를 내릴 수도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도발 공세의 패턴을 분석해 앞으로의 행보를 전망해 본다.
 
 
매사에 시한을 너무 구체적으로 못 박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 그런 국면을 맞았다. 지난 8일 미국령 괌도를 타격하겠다는 전략군사령부 발표를 내놓을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이달 중순까지 작전계획을 완료하겠다는 공표가 이어지자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한껏 올라갔다.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내세워 섬 인근 수역을 포위하는 방식으로 공격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까지 이어졌다. 김정은이 전략군사령부를 방문(14일)해 타격계획을 보고받는 장면이 어제자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그는 “포위사격 준비가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환하게 웃었다. 보름 만의 공개석상 등장은 그가 이 사안에 얼마나 올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김정은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 변화가 감지된다. 당장 일을 낼 것처럼 전의에 불타던 그가 “미국 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며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급에 발끈하던 분위기에서 한발 빼는 모양새다. 미국의 대북압박을 거론하며 “지금 상황이 어느 쪽에 불리한지 명석한 두뇌로 득실관계를 따져보는 게 좋을 것”이란 말도 던졌다. 미국에 공을 넘기며 스스로 호흡조절에 들어간 듯한 태도다. 자신들이 제시한 시한에 발목이 잡히는 걸 피해보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상황은 꼭 2년 전 목함지뢰 도발 때의 북한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북한군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한 지뢰를 밟아 한국군 부사관 2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우리 군 당국이 북한에 대한 응징 차원으로 전방 지역에서 대북 방송을 전개하자 북한은 포격 도발로 맞섰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같은 달 20일 “48시간 내에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시한이 다가오면서 다급해진 건 북한이었다. 추가 도발은 한·미 연합 전력의 대북 응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함부로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시한을 넘기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북한 스스로 스타일을 구길 수 있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결국 북한이 먼저 나섰다.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앞으로 대남통지문을 보내 판문점 회담을 제안했다.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두 시간 남긴 시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호락호락하게 넘기지 않았다. 즉각 대북 회신을 통해 “김양건보다는 북한군을 대표하는 황병서가 직접 나오라”고 수정 제의했다. 북한은 이를 받아들였고 22일부터 남북 고위 회담이 열렸다. 이틀간의 협상을 통해 북한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이 부상당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 등 6개 항의 합의문에 서명해야 했다. 대남도발에 대해 좀체 사과하지 않아온 북한 군부엔 사실상 첫 굴욕이었다.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한 건 북한의 도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여론의 결집이었다. 젊은 군 장병들의 희생에 가장 분개한 건 또래 청년세대였다. 각급 군부대 병사들은 전역을 연기하면서까지 대북 비상태세에 나섰다. 남북 정상회담 때 막후 역할을 한 야당 실세 인사도 김정은 정권의 도발적 행태를 비판했다. 국회 결의 등 여야가 초당적 대처에 나선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사고 당시 영상이 생생히 공개됐는데도 “증거 영상을 제시하라”는 북한의 뻔뻔한 태도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군 당국의 단호한 대처도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유감’ 표명을 이끌어 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정은이 준(準)전시사태까지 선포하며 벼랑끝 전술을 썼지만 먹히지 않았다. 일각에서 대북특사 파견 같은 주장도 있었지만 곧 사그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투복 차림으로 3군 사령부를 방문해 “추가 도발 시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며 군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상황에 관여했던 정부 당국자는 “국민여론과 정부·군 당국의 일치된 대북압박 여론에 북한이 달리 발뺌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귀띔했다.
 
현재 북한은 괌 타격을 위한 준비를 일단 마친 상태로 볼 수 있다. 지난 9일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8월 중순까지 괌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해 김정은에게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14일 보고 절차가 진행됐다. 북한 측 설명을 토대로 하면 이젠 발사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괌 ‘포위사격’을 주민들에게도 공개하겠다는 구상까지 밝힌 상태다.
 
문제는 오는 21일 시작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군사연습이다. 전폭기와 항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을 포함한 한·미 연합전력이 한반도에 포진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2년 전 목함지뢰 도발 당시에도 북한 군부는 이 군사연습 일정 때문에 대남도발의 수위를 더 높일 수 없었다.
 
이번 사태의 경우 김정은은 이 같은 스케줄을 고려해 ‘8월 중순’을 시한으로 괌 타격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발사 준비를 마친 상황을 유지하면서 한·미 군사연습을 지켜본 뒤 출구를 모색하겠다는 계산이다. 당장 북·미 대화까지 가기 어렵더라도 일촉즉발의 충돌에서 벗어나는 시점을 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의 군사 대결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판단에서 이번 일을 내부 결속이나 리더십 다지기에 활용할 공산도 크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력에 놀라 대화로 돌아섰다거나 김정은의 주동적 조치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모면했다는 식의 선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괌 타격 계획을 보고받은 소식을 전하며 “남조선과 일본, 태평양 작전지대와 미국 본토의 타격 대상물들을 섬멸적인 초강력 타격으로 초토화할 것”이란 위협을 쏟아냈다. 핵과 미사일의 첫 타격 대상으로 서울을 꼽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 72주년 경축사를 통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심각성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에 치중하며 군사회담까지 언급한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2년 전과 많이 달라진 대북접근법이 북한에 잘못된 사인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