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8월3일 인민소비품 생산운동’(이하 8·3운동)을 독려하며 전국적 규모에서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8·3운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4년 8월 3일 평양시 경공업제품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폐자재·부산물을 이용한 생활필수품 생산운동을 전 군중적으로 벌리라”고 지시한 후 시작된 운동이다. 이 운동을 통해 생산된 생필품을 ‘8월3일 인민소비품’(이하 8·3제품)이라고 부른다.
 
노동신문은 4일 ‘전국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개막소식을 전하며 “각지 공장·기업소의 가내작업반들이 생산한 7700여종에 8만 5000여점의 생필품이 출품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8·3운동’을 전 군중적·사회적으로 벌려나갈 것”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회는 3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다.  
 
북한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지난 7월 24일 “3대혁명전시관에서 열린 ‘평양시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에서 자기 지역에서 흔한 원료원천을 이용해 생산한 1만 여종에 20만 여점의 소비품들이 전시됐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은 지난 7월 21일부터 연일 평안북도·함경북도·강원도·남포시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를 소개하며 “소비품에 대한 주민들의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킬 것”을 촉구했다.
 
조선중앙TV는 ‘함경북도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에 500여종에 2만여점의 생필품이 전시됐다고 전했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조선중앙TV는 ‘함경북도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에 500여종에 2만여점의 생필품이 전시됐다고 전했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올해로 33주년을 맞는 ‘8월3일 인민소비품 생산운동’은 북한이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할 때마다 강조하는 대중운동이지만 ‘8·3운동 및 8·3제품’에 대한 인식은 시장 확산과 더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80년대 김정일은 생필품의 부족현상을 다소 해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8·3운동’을 발기하고 ‘8·3제품’들을 구역·군들의 직매점에서 국정가격(국가가 정한 가격)이 아닌 수요와 공급의 원칙(합의제 가격)에 따라 판매하도록 하였다. 
 
그 이전에는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생필품을 만드는 소규모의 ‘일용필수품작업반’이 존재했으나 이 운동이 시작되면서 전국적 규모에서 ‘8·3작업반’의 정교한 생필품 생산라인이 형성됐다. 예컨대 피복공장은 국가계획에 따라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어린이 옷·가슴띠(브래지어)·난닝구(런닝셔쯔) 등을 만들었다. 
 
평양시 인민위원회는 ‘8·3운동’을 지도하는 ‘8·3국’을 신설했고 89년 6월 ‘8월3일 인민소비품 생산 모범군(시·구역)칭호’를 제정해 전국적 확산을 도모했다. 그 결과 ‘8·3제품’들을 파는 직매점이 평양시의 중심부인 평양대극장 앞에 자리를 잡아 고객들을 맞이했고 고려호텔 옆 창광상점에서 제2경제(군수산업)공장들에서 생산된 ‘8·3제품’들이 판매됐다. 
 
90년대 들이닥친 경제난으로 북한의 대부분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면서 ‘8·3제품’생산은 거의 중단됐고 그나마 생산되는 제품들은 질이 너무 낮아 주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때부터 북한은 질이 떨어지는 상품과 공장에서 생산한 정품(正品)이 아닌 제품을 ‘8·3제품’이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평양시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를 둘러보는 시민들

‘평양시 8월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를 둘러보는 시민들

나아가 2000년대 들어 중앙경제와 지방경제가 사실상 분리 운영되고 지방공장들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8·3조’와 ‘8·3작업반’·가내작업반들은 공장제품을 직매점·수매상점뿐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면서 금액(金額)상 계획을 진행했다.
 
북한은 국가경제계획을 지표별 계획과 금액상 계획으로 나뉜다. 국가에서 지정해주는 지표별 계획을 집행하지 못해도 금액상 계획이라도 맞추어야 노동자들의 월급과 공장자금을 해결할 수 있다.  
 
‘8·3제품’이 국가지표계획에 없는 상품인 관계로 공장들은 주민들의 수요에 따라 ‘8·3제품’을 선택·생산했으며 판매는 국가납부금액이 명백한 직매점·수매상점보다 시장을 더 선호했다. 당시 전국에 확산된 장마당(시장)의 활성화에 ‘8·3제품’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셈이다. 
 
평안남도 공장 책임일꾼이었던 한 탈북민은 “시장에서 구입한 목재로 주민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파는 것이 공장의 주요업무 중의 하나였다”며 “공장 비자금 조성을 위해 5대5의 비율로 시장과 직매점에 납품했다”고 말했다.
 
‘8·3제품’생산은 북한경제운용에서 처음으로 지표계획 외 생산과 합의가격제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사례로써 시장경제에서 생필품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출로를 찾은 것이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하며 ‘인민생활 향상’을 중요한 목표로 내세웠다. 김정은은 2013년 3월에는 ‘전국경공업대회’를 열고 “‘8월3일 인민소비품 생산운동’처럼 질 좋은 소비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8월3일 인민소비품전시회'가 지난 3일 내각의 식료일용공업성 인민소비품전시장에서 개막됐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생필품들이 전시돼 있다.[사진 조선중앙TV캡처]

'전국 8월3일 인민소비품전시회'가 지난 3일 내각의 식료일용공업성 인민소비품전시장에서 개막됐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생필품들이 전시돼 있다.[사진 조선중앙TV캡처]

북한 국가경제기관에서 처장으로 일하다 김정은 체제시기 탈북한 이모씨는 “북한당국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8·3제품전시회’를 열며 주민생활 향상을 강조하지만 지금은 ‘8·3운동’이라고 하면 ‘시장 활동’이라고 인식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공장·기업소 ‘8·3작업반’들이 생산원료를 자체로 확보하고 직매점과 시장에 팔아 어렵게 수입금을 벌기 보다 최근에는 ‘8·3돈’을 걷어 들이는 것이 효율성이 높다는 인식하에 이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8·3돈’이란 ‘8·3작업반’이나 가내작업반에 망라된 노동자들이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자체로 시장에서 벌어 매달 일정하게 납부하는 돈이다. ‘8·3돈’은 직장마다 다르지만 평양시의 경우 월 평균 30달러 정도이다. 쌀 40kg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을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돈을 납부하는 노동자들은 주 1회 생활총화·학습을 제외한 각종 동원 및 일체 조직생활에 참여하지 않고 시장 활동만 하는 자유인이다. 그리고 장사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공장에 출근해서 월급을 기대하며 생산 활동을 한다. 북한에서 노동자 평균월급으로는 쌀 2kg도 사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북한에서는 뇌물을 주고 직장출근을 면제받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8·3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 평양시와 평안남도 평성 등에서 생산되는 식료품·가방·신발을 비롯한 ‘8·3제품’들은 질이 높아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제품이 중국산보다 값이 더 비싸고 직매점과 시장에서의 가격차이가 거의 없어지면서 주민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고 한탄하고 있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