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요즘 축제 분위기다. ‘대륙간탄도로케트’의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잔치로 흥청대고, 밤에는 화려한 불꽃이 대동강을 수놓는다. 관영 선전매체는 김정은 찬양에 바쁘다.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담대한 배짱, 영활한 지략으로 세인의 예상을 뒤엎으며…”를 외치는 아나운서는 숨가쁘다. ‘김정은 동지’를 찬양하는 수식어만 모두 59글자에 이를 정도다. 그런 떠들썩한 분위기 뒤편으로 감지되는 김정은 체제의 고민을 짚어 본다.
 
평양 권력 내부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최후승리’다. 지난달 28일 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 소식을 전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반제·반미 대결전에서 반드시 최후승리를 이룩할 것”이란 다짐으로 끝났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축하연회에서도 이 말은 핵심 화두가 됐다. 31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논객 방성화의 정론(政論) ‘조선의 힘 세계를 뒤흔든다’는 “최후승리의 그날까지 계속 힘차게 앞으로!”란 글귀로 마쳤다. 마치 김정은 체제 정책노선의 최종 지향점을 알리는 분위기다.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2012년 4월 김정은의 연설에서다. 할아버지인 김일성(1994년 사망) 출생 100주년을 맞아 김정은은 자신의 첫 공개연설을 했다. 그는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이 연설의 끝을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란 구절로 맺었다. 당시 28세이던 청년 지도자는 연설대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미숙함 때문에 ‘최후승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북 관측통들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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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혔던 이 키워드가 5년여 만에 주목받게 된 건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박이 마지막 주로(走路)에 접어든 때문이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5월 함북 풍계리 서쪽 갱도에서 감행된 2차 핵실험을 주도했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2월과 지난해 1월, 9월 추가 핵실험을 벌였다. 미사일 쪽으로 눈길을 돌린 그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거쳐 마침내 ICBM급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아버지인 김정일의 유훈(遺訓)으로 여겨지는 ‘선군(先軍)노선’에 집착한 결과다.

 
지난달 4일 ‘화성-14형’을 1차 시험할 때만 해도 김정은은 “미국에 크고 작은 선물을 주겠다”며 추가발사를 예고했다. 하지만 2주일 뒤 2차 시험을 마친 뒤에는 “이 정도면 미국이 감히 우리를 건드리면 무사할 수 없으리란 걸 제대로 이해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과시했다.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는 이쯤에서 일단 숨고르기를 하겠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미 본토 전역이 우리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게 뚜렷이 입증됐다”는 그의 주장에는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인 미사일의 결합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메시지가 읽혀진다. 말 그대로 기세등등이다.
 
물론 일부 과대망상 수준의 언급은 김정은의 현실 인지 능력에 의문을 갖게 한다. 김정은은 “미국놈들이 핵 방망이를 휘두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핵전쟁 무력으로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말했다. 잇따른 ICBM급 발사 성공에 한껏 고무된 여파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압박 전략은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앞둔 형국이다. 세계적 외교석학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핵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사전에 합의하면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나섰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채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김정은을 제거하는, 이른바 ‘레짐 체인지’를 미·중 간에 공론화하자는 아이디어다.
 
김정은 제거에 초점을 맞춘 대북공세는 엘리트층의 체제이반을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이미 북한 핵심 권력층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평양을 등졌다. 이른바 ‘빨치산’ 세대로 불린 북한 정권 수립 일등공신 그룹의 이탈도 속속 이어진다. 외교관과 무역대표부 등에서 일하며 해외체류 특권을 누리던 인사들이 주축이다. 2013년 말 벌어진 고모부 장성택 처형 사태는 파워엘리트들에게 “여차하면 우리도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부추겼다. 고위 탈북인사는 “김정은이 화성호를 아무리 쏘아올린다 해도 북한 핵심층들은 결코 내켜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축하행사에 마지못해 나서 박수치고 환호하는 쇼를 하지만 결국 “여차하면 나도 가족과 함께 모아둔 달러를 챙겨 탈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얘기다.
 
집권 6년차인 김정은이 자신과 가계의 우상화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달 개최 예정인 이른바 ‘백두산위인칭송대회’도 빨간불이 켜졌다. 북한은 이 행사를 2017년 8월 백두산과 평양에서 진행한다고 지난해 10월 관영매체를 통해 밝혔다. 소위 ‘백두산 3대 장군’으로 불리는 김일성과 김정숙 부부, 그의 아들인 김정일 등 세 사람을 우상화하는 ‘1호행사’다. 해외 친북단체를 내세웠지만 김정숙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장이 행사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올 초까지 채비를 해 왔다. 하지만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고 8월 들어서도 기척이 없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행사가 취소됐거나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2년 김정은 생일(1월 8일)에 맞춰 김정은의 어린 시절과 생모 고용희의 모습을 TV로 방영했다. 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 16일)을 사흘 앞두고는 고용희를 ‘평양의 어머니’로 찬양하는 시를 노동신문에 싣기도 했다. 이후 아무런 후속 움직임이 없자 고용희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이 알려질 걸 우려한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특히 고용희의 아버지 고경택이 일제시대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육군성 소속 히로타군복공장의 간부로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칫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가 ‘사상강국’에서 ‘군사강국’으로 전변됐다고 주장한다. 이제 자신이 주창한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경제강국까지 꿈꾸겠다는 포부를 내비친다. 조선노동당 집권 72년에 자신의 향후 집권 전망을 더해 100년 왕국을 꿈꿀 기세다. 하지만 3대세습으로 점철된 역사의 수레바퀴는 더 이상 거꾸로 돌지 못할 듯하다. 김정은의 발목을 잡는 건 국제사회의 대북압박만이 아니다. 제동 걸린 우상화에다 엘리트의 체제이반, 민심 동요까지 겹친 삼각파도가 평양 정권을 뒤흔들고 있다. 진짜 위기는 ‘미제와 남조선’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