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의 북한 대사관이 요즘 뒤숭숭하다. 평양에서 특별검열단이 투입돼 고강도 조사가 한창이다. 컴퓨터와 CD는 물론 저장장치인 외장하드와 USB까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대사관저 바깥 지역에 거주하던 공관원과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평양 소환 조치를 포함한 큰 숙청 바람이 불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북한의 ‘외교 1번지’로 불리는 주중 대사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적해 봤다. 
 
발단은 한 편의 TV 드라마였다. 주중 북한대사관 소속 간부가 지난달 말 남한 TV 드라마를 몰래 보다 적발된 것이다. 슬쩍 눈감아주거나 자체 징계로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문제의 노동당 인사가 북한 대표부의 ‘경공업 대표’ 직책을 갖고 있는 비중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해외 공관에 근무하다 탈북·망명한 고위 인사는 “베이징 경공업 대표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인민소비품(주로 경공업 제품)의 조달을 담당하는 꽤 중요한 자리”라며 “특히 김정은과 그 일가친척, 특권층의 생필품을 맞춤형으로 구매해 평양에 보내는 일도 담당한다”고 귀띔했다.
 
 
공관원을 감시·단속하는 ‘안전영사’(국가보위성 소속)는 이 사실을 평양에 즉각 보고했다. 그리고 중앙당과 보위성 등으로 구성된 검열단이 즉시 투입됐다. 문제가 된 경공업 대표와 그 가족은 물론 공관·대표부 소속 인력이 모두 검열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주로 남한 영상물 시청과 보유 여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컴퓨터와 각종 저장장치를 샅샅이 뒤졌고, 특히 휴대전화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남한 영상물이나 뉴스를 들여다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외부에 거주하는 북한 측 관계자는 물론 대사관 내 생활구역에 머물러 온 공관원과 가족들 상당수가 적발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베이징 중심지인 차오양(朝陽)구 르탄베이루(日壇北路)의 외교단지에 자리한 이 대사관은 해외에 개설된 북한 외교공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중국 내 외국 공관 중에서도 러시아 다음이다. 주중 북한대사관은 울타리 내부에 가족 단위 주거시설이 갖춰져 있다. 7층 규모의 아파트까지 들어서 있고, 공관원뿐 아니라 출장 나온 북한 관리들도 이곳에 주로 머무른다. 주변에 북한 식당과 식료품점·안경점·환전소 등도 있다.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한 작은 타운 내에서 남한 영상물을 접하는 비법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검열단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친김에 전반적인 공관 운영 실태와 사상검증까지 진행 중이란 얘기다. 고위 탈북인사는 “평양에서 직파된 중앙당 검열의 경우 건물 내부 곳곳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까지 꼼꼼히 살핀다”고 말했다. 가정집 초상화의 경우도 먼지가 쌓여 있거나 비가 새 얼룩진 채 방치됐다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초상을 ‘모시는’ 기본 자세가 비뚤어지면 모든 게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생각에서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는 북한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유일영도 10대 원칙’에서 잘 엿볼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절대충성을 통해 김정은 체제를 결사옹위하자는 취지를 담은 11쪽짜리 소책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배하는 규범이다. 이 원칙의 제3항은 “김일성·김정일의 권위, 당(노동당)의 권위를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절대 융화묵과하지 말고 비상사건화하라”고 요구한다. 남한 영상을 보거나 김일성 초상화 관리를 소홀히 한 행위가 반(反)혁명이란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도 유일영도 10대 원칙의 막강한 파워 때문이다. 4년 전 처형당한 장성택(김정은의 고모부) 국방위 부위원장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번 일탈행위에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주중 북한대사관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이다. 체제 고립이 심해진 북한 외교의 교두보이자 마지막 숨통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중국은 후견국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 김정은의 지시로 이뤄지는 외교활동도 베이징을 거치는 동선으로 짜이는 양상이다.
 
지난해 7월 런던에서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탈북·망명 사태가 터진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중국 주재 공관이 뚫렸다는 당혹감도 감지된다. 서방 언론을 대상으로 북한 체제를 선전하던 태 전 공사의 체제이반은 충격을 던졌다. 북한은 대대적 검열 끝에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를 경질하고 외무성 담당 간부를 숙청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해외 체류 외교관과 대표, 무역일꾼 등에게 가족 동반 금지령을 내리고 이미 체류 중인 경우 평양 귀환을 지시했다.
 
사실 베이징 북한 공관은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내홍이 끊이지 않았다. 태영호 망명의 여진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에는 대표부 고위 간부 2명이 가족과 함께 탈북·망명했다. 비슷한 시기 대사관 소속 북한 요리사가 의문의 자살을 하는 사건까지 벌어져 분위기가 흉흉했다고 한다. 97년 2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망명한 것도 평양 귀환길에 며칠 이곳에 머무를 때였다.
 
우리 정보당국은 베이징 북한 공관의 이상징후를 포착해 사태 추이를 관망 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해외에 체류 중인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 남한 TV 드라마와 영화·가요가 확산되는 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지난해 12월 국회 정보위 간담회에서 “북한 주민들이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동경심을 키운다”고 말했다. 외교관들도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한국 뉴스부터 먼저 열어본다는 얘기다.
 
평양은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 성공에 축제 분위기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김정은·이설주 부부가 참석한 축하 연회까지 펼쳐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에 크고 작은 선물을 자주 보내겠다”며 추가 도발을 예고했다. 지난 2주 동안 공개활동을 멈춘 채 여름 휴양을 겸한 장고에 들어갔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북한 당국의 고민스러운 모습도 드러난다. 우리 정부가 지난 17일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 제안했지만 열흘 가깝도록 아무런 답이 없다. 이달 말 평양에서 개최하려던 ‘대동강맥주 축전’을 전격 취소한 것을 두고도 이상징후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기세를 높여 온 것과 다른 분위기란 점에서다.
 
이런 국면 속에서 남한의 TV 드라마와 영화·가요는 북한 외교무대의 심장부인 베이징 공관을 넘어 평양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판 한류(韓流)는 김정은 체제의 주축으로 간주돼 온 엘리트와 핵심 계층까지 뒤흔들고 있는 기세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