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치 월급으로 작은 버터빵 6개를 사 먹으면 지갑이 텅빈다. 여성 화장품 세트 하나 장만하려면 무려 121개월, 즉 10년 넘게 꼬박 저축해야 한다.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평양의 쇼핑센터와 장마당은 흥성인다고 한다.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내로라하는 북한 문제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마법 같은 북한 시장경제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캐나다 동포 A씨는 지난 5월 방북길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안내원을 따라 둘러본 평양의 대표적 쇼핑센터인 광복거리상업중심. 그런데 상품 가격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살결물(스킨)과 물크림(로션) 등 6개 품목으로 구성된 ‘미래’라는 브랜드의 화장품 세트 가격은 북한 원화로 36만5100원. 실내용 공기청정제인 ‘방안 향수’는 개 당 4만3500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북한 노동자 월급이 보통 3000원 수준이란 걸 알고 있던 A씨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화장품 세트 하나를 사려면 10년, 공기청정제는 14개월 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북한에서 요즘 한창 인기를 얻어 가는 커피믹스는 100봉지 한 묶음에 7만2500원에 팔렸다. 한때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에게 제공돼 ‘막대커피’란 이름으로 각광받던 제품이다. 북한은 컬러와 디자인까지 베껴 ‘삼복’(三福,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내린 복이란 의미)이란 자체 상품을 만들었다. 가격표대로라면 한 달 월급으로 커피믹스 4개를 사면 남는 게 없다는 얘기가 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첫 번째 비밀은 북한 특유의 이중환율 제도에 있다. 북한은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고려호텔이나 주요 외화상점·쇼핑몰에서 1달러당 150원 정도의 공식 환율을 게시한다. 이대로라면 광복거리상업중심에서 팔리는 화장품 세트는 2434달러, 커피믹스는 483달러에 달한다. 북한 돈 306만7900원인 전기자전거는 무려 2만452달러다. 웬만한 소형 자동차 값에 맞먹는다. 공식 환율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비공식 환율인 암달러는 1달러에 북한 돈 8000원에 거래된다. 이걸 적용하면 화장품 세트는 45달러(우리 돈 5만1700원), 전기자전거는 383달러(우리 돈 44만원) 수준이다. 암달러라고 해서 환전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다. A씨는 “물건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수퍼에서 조선원(북한 원화)으로 바꿔줬다. 그런데 환율이 암시장과 같은 8000원이었다”고 말했다. 호텔·쇼핑센터 문밖만 나서도 공식 환율보다 53배나 더 힘센 암달러로 환전할 수 있다. 북한 안내원이 약간의 수수료를 챙기고 바꿔다 주기도 한다. 고위 탈북인사는 “평양을 처음 방문하거나 물정에 여둡지 않다면 공식 환율로 환전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달러 한 번 손에 쥐어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북한 민초들은 어떻게 먹고사느냐는 점이다.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11일 밝힌 평양의 쌀값은 1㎏당 5800원. 한 달 월급으로 쌀 500g밖에 살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북한 주민의 민생을 살리는 두 번째 비밀코드가 작동한다. 바로 시장, 즉 장마당 경제다. 일부 특수계층을 제외하면 식량은 물론 부족한 생필품 대부분은 장마당에 의존한다. 상당수 주민은 물품을 구입하던 소비자에서 벗어나 직접 장사에 뛰어들고 있다. 노동당과 행정조직의 사무원이나 공장·기업소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은 장마당에 나가 국수를 말아 파는 등의 장사를 한다.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현상은 인텔리 계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김일성대 출신 탈북인사는 “2000여 명의 김일성대 교수 가운데 부부가 교수인 경우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꽤나 수준 있는 교수·교원의 부인도 장마당에 나간다”고 말했다. 정무원(내각) 국장급 대우를 받는 김일성대 교수의 경우에도 월급은 5000원에 불과하다. 둘 다 교수직에 매달리다간 굶어 죽기 십상이란 얘기다. 그나마 김일성대 교수에게는 아파트와 식량(가족 1인당 하루 쌀 600g)이 공급된다. 탈북인사는 “부부 김일성대 교수의 경우 집만 덩그러니 있고 생계는 빠듯한 한국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생긴 건 1990년대 말 대기근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다. 식량 부족 등으로 국가배급망이 붕괴했고, 체제 위기까지 겪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당시 굶어 죽은 사람이 200만~300만 명(국가정보원은 46만 명으로 추산)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아사자 중 상당수가 배급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하급공무원이나 지식인층이란 점은 북한 정권에 충격을 줬다. 북한은 2002년 들어 국정가격을 올리고 월급도 18~25배 대폭 인상하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행했으나 상품 공급 부족 등으로 사실상 실패했다.
 
암달러로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은 그저 ‘상징적 임금’이란 인식이 퍼지며 사회 부작용도 속속 생겨났다. 비공식 수익활동과 뇌물의 성행이다. 기관 소속 차량을 몰래 운행해 돈벌이를 하거나 공장 부품을 하나둘 빼내 조립해 시장에 파는 경우다. 김일성대와 김형직사범대 같은 명문대 교수들은 과외시장에 뛰어든다. 탈북인사는 “3~5명 정도를 가르치는데 시간당 각기 1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전했다. 장마당 허가권과 입시·취업·승진 등 사회 전반에 뒷돈과 뇌물이 성행하는 것도 결국 월급으론 살 수 없는 현실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듬해 3월에는 핵 개발 덕으로 국방비를 민생에 돌릴 수 있게 됐다며 경제·핵 병진노선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약속은 5년 넘게 지켜지지 않았고, 대북제재를 자초해 주민들의 삶은 점점 고단해졌다.
 
북한에서는 “노동당보다 장마당”이란 말이 은밀히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조선노동당은 민생을 내팽개쳤지만 장마당은 숨통 역할을 해 준다는 의미다. 김정은은 ‘핵 강국’을 외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공으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 안에 두게 됐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달러의 맛에 빠진 주민들은 “미국 할아버지(100달러에 새겨진 벤저민 프랭클린을 지칭)가 최고”라고 여긴다. 중국 할아버지(100위안에 그려진 마오쩌둥)에 이어 ‘수령님’(북한 화폐의 김일성을 지칭)이 제일 마지막이란 비아냥이다. 장마당에 부는 달러화(Dollarization) 바람은 북한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