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굳게 닫혀 있다. 연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에 북한은 수성(守城)을 고집했다. 어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9년 만의 남한 권력 교체에 반색할 것이란 예상은 깨졌다. 선뜻 손을 맞잡지 못하는 김정은의 속사정은 뭘까. 새 정부가 중대한 대북 착시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 함수를 짚어본다.
  
출범 50여 일 동안 새 정부가 쏟아낸 대북 제안은 가위 공세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5월 10일)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며 남북 정상회담 추진 카드를 띄웠다. ‘1급 회담 기술자’로 꼽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정상회담은 필요하다”며 힘을 실었다. 굳게 닫힌 개성공단에 다시 기계소리가 울리도록 하겠다는 방침이 등장했고, 금강산 관광길도 꿈틀댄다. 기지개를 켠 인도 지원 단체들의 대북 접촉은 줄줄이 승인됐다.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가 참여하는 문제와 함께 공동 개최까지 거론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그제 취임 일성으로 이산가족 상봉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8·15 광복절이 아니라도 당장 되면 제일 좋겠다”며 속도를 낼 것임을 내비쳤다. 대북 제안의 종합선물세트란 말이 과하지 않다. 막혔던 남북 교류·협력에 봇물이 터질 기세다.
 
그런데 정작 평양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대북 지원 봇짐을 싸던 단체들은 퇴짜를 맞았고, 첫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던 6·15선언 17주년 ‘공동행사’도 각자 상을 차리는 반쪽짜리가 됐다. 문 대통령이 의욕을 보인 평양 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은 초장에 벽에 부닥쳤다. 지난달 말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인터뷰에서 “단일팀을 한다는 말 자체가 지금 우습다”고 일축했다. “북남관계를 체육으로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고 기대가 지나친 것”이란 그의 말에는 파고들 빈틈이 없다.
 

평양 선전매체의 입도 거칠어지는 형국이다. 노동당 외곽기구인 아태평화위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외세와 맞장구치며 온당치 못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한 건 취임 나흘 만이다. 처음엔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다 ‘집권자’로 바꿔 부르며 대통령 때리기 공세의 고삐를 죄어 왔다. 어제는 문 대통령 방미에 시비 걸며 “한·미 동맹이 자신의 뿌리고 그것이 있어 오늘이 있다느니 뭐니 하며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조짐이 좋지 않지만 정부 당국의 대응은 미덥지 않다. 정권 출범 초기 북한의 의례적 ‘남한 길들이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는 데서 위안을 찾는 분위기도 있다. 머지않아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간파하게 되면 대북 지원 수용을 시작으로 민간교류와 당국대화에 적극 호응해 올 것이란 기대에 무게가 실린다. 북핵 문제의 해결도 꿈꾼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핵 동결을 입구로 대화를 시작하고, 핵 폐기라는 출구로 북한을 유도한다”는 청사진이 지침서다. 회담·교류가 절정을 이루고 개성공단이 첫 가동하던 황금기에 터져나온 9·19 공동성명(2005년 9월)에서 북핵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약속받았던 황금기의 재연 구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집권 6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33세 젊은 지도자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향해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고 호언한다. 한·미 동맹을 겨냥해서는 “미 제국주의와 그 졸개들”이라며 조롱한다. 극렬한 대남 비난의 대상을 ‘남조선 집권세력’이나 ‘군부 호전광’으로 한정하던 선대(先代) 수령 시절의 신중함은 사라졌다. 모든 걸 뭉뚱그려 타도 대상으로 삼는 대남 적개심과 열패감이 폭발 직전이다. 이런 통제불능의 김정은에게 대남통들이 ‘남조선과의 대화’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대화에 대한 평양 당국의 수요도 좀체 찾기 힘들다. 핵 문제는 남한과 다룰 문제가 아니란 입장이 확고한 데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교류·협력 같은 낡은 레퍼터리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듯하다. 대북 지원은 김정은 시대의 금기어가 됐다. 지난해 8월 말 발생한 함경도 북부 지역 대홍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5차 핵실험(9월 9일) 버튼을 눌렀다. 대북 구호 채비를 하던 우리 인도지원 단체들은 아연실색했다. 돌격대를 투입해 수해복구와 새 주택건설을 마친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전화위복’을 주장했다. 중국에서 만난 노동당 간부는 “분유나 영양제 같은 걸로 우릴 돕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리라”고 호언한다.
 
북한은 ICBM 발사 성공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 관문을 넘었다”(4일 국방과학원 보도)는 입장이다. 상황이 절박한데도 정부의 대북 제안에는 고민이나 전략적 코드가 읽히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여전히 “평양에 가겠다”고 말한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때 발표된 6·15 선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뤘고, 2007년 2차 정상회담도 평양에서 치렀다. 3차 회담은 서울에서 개최하는 게 상식과 남북 호혜평등 원칙은 물론 우리 국민 정서에도 맞다. 북한 사정이 어렵다면 제주 방문 카드라도 성사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평양을 또 가는 건 남북관계의 정도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대동강의 기적’(6월 1일 제주포럼 영상 축사)을 강조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미 여명거리를 비롯한 평양 뉴타운 공사를 통해 대동강의 스카이 라인을 바꿨다고 선전한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스스로 이룬 ‘대동강의 전변(轉變)’이다. 한강의 기적을 전수해 주겠다는 제안이 먹혀들 리 없다. 과거회귀형 대북메시지만 건성건성 써서 대통령에게 건네는 참모들을 호되게 꾸짖어야 할 판이다. 북한을 제대로 읽어내는 전략가의 기용이 아쉽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개활동을 접은 채 보름간 숨고르기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제 ICBM 시험발사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0월 첫 북핵 실험의 충격에 맞먹는 북한의 도발이다. 북한 세습정권이 3대(代)를 이어 꿈꿔온 핵무기와 투발수단(미사일)의 결합 완성이다.
 
남북관계 이벤트에 열광하던 호시절 꽃길은 막다른 골목을 만난 듯하다. 이제라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서두를 때다. 패러다임은 인식의 틀이자 새로운 비전을 향한 선도적 개안(開眼)이다.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문 대통령이다. 하지만 똑같은 노선과 행동은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뿐이다. 대통령과 대북 참모들에게 꽤 오랜 침묵과 고뇌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팩트가 아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