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잇단 핵·미사일 드라이브에 북한 외교라인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대북압박 조치를 온몸으로 막아낼 수 밖에 없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노선을 찬양·선전하는데까지 동원되다보니 평양과 국제 외교가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5일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인민문화궁전에 불러모았다. 박정학 아주2국장은 이른바 ‘정세 통보 모임’에서 하루 전 북한이 강행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발사에 대해 설명했다.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중대하고도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반응을 썰렁했다는 게 외교경로를 통해 입수한 우리 정보 당국의 첩보다.
 
앞서 한성렬 외무성 부상(차관급)은 11일 평양의 외교관과 국제기구 대표를 초청했다. 한 부상은 “국가보위성이 한·미 당국의 김정은 테러음모를 밝혀냈다”는 주장을 펼쳤다. 보위성이 이달 초 ‘특대형 테러음모 적발’이라며 내놓은 걸 확산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삼엄한 경호가 펼쳐지는 김정은을 테러하기 위해 한·미가 포섭했다는 인물이 러시아에 나가있던 북한 벌목 노동자란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고, 보위성의 ‘자작극’ 의혹까지 제기됐다. 지난 1월 권력남용 등으로 몰락 위기에 처했던 김원홍 체제의 보위성이 김정은 신임을 얻기 위해 꾸민 사건이란 분석도 나왔다.
 
한성렬은 지난 14일 미 AP통신에 이어 18일에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6차 핵실험을 위협하고 추가 미사일 발사를 주장하는 등 전방위로 나서고 있다. 외교관 출신 탈북인사는 “베테랑 대미통인 한성열까지 내세웠다는 건 그 만큼 보위성이 이슈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있는 외교관이나 대표부 멤버들도 예외는 아니다.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김인룡 차석대사는 요즘 외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북한 인사 중 하나다. 1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과 함께 최근 150여개국에 피해를 입힌 랜섬웨어 공격 관련 ‘북한 배후설’까지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다. 김 차석대사는 “무슨 일만 벌어지면 미국과 적대 세력은 의도적으로 우리와 이를 연결지으며 반북 비난전을 벌인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과거 북한이 주도한 해킹과의 기술적 유사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눈총을 받고 있다.
 
유엔을 무대로한 ‘김정은 테러 음모 적발’ 선전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 대표부는 12일 공보문을 내고 “이번에 적발 분쇄된 특대형 범죄는 단순히 우리 공화국만이 아닌 인류의 정의와 양심에 대한 테러”라며 유엔 회원국이 반(反)테러 타격전에 호응해달라고 주장했다.
 
올들어 가장 큰 위기를 맞았던 건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다.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씨가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말레이시아 경찰은 북한 대사관을 공작거점으로 지목됐다. 소속 외교관까지 범행에 가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와 언론의 눈길이 쏠렸지만 강철 대사는 막무가내로 버텼다. 그는 “사망한 건 김정남이 아닌 북한 공민 ‘김철’(김정남의 여권상 이름)”이라고 버티며 불똥이 김정은에게 튀지 않도록 모르쇠로 일관했다.
 
외교관에게 주는 주재국의 승인 조치인 ‘아그레망’이 거부되는 수모에다, 대사 추방이란 사태도 겪고 있다. 지난 1월 독일 주재 북한 대사로 부임한 박남영은 2명의 대사 후보가 거부 당한 뒤 9개월 만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불법 행위로 지난해 초 외교관 2명이 추방된데다, 정보기관 간부를 대사로 파견하려 한 걸 독일 당국이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춘일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해 11월 유엔 대북결의에 따라 여행금지 대상으로 묶이면서 도중하차했고 마동희 대사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이 사실상 끝난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특별제재 대상에 오른 김석철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도 9년 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실상 추방됐다. 제재 대상인 조선광업개발회사(KOMID·창광무역)의 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외교관 신분을 악용한 밀수와 각종 불법행위까지 드러나면서 북한 외교의 위상은 바닥으로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8월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삼성전자 TV·에어컨과 담배 수 만 갑을 몰래 반입하다 세관에 적발됐다. 앞서 같은 해 6월에는 파키스탄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주류 밀매를 하며 몇 배의 차익을 올리다 적발된 사례가 10건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북한이 외교 공관 건물과 부지를 불법 임대해 수익을 챙긴 건 독일과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 등 확인된 곳만 4개국가다.
 
정부 당국자는 “평양으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에다 본국으로의 ‘충성자금’(달러 상납) 압박까지 받다보니 해외공관들이 불법·탈법 행위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탈북 망명한 태영호 런던주재 북한 공사는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사는 한 달에 1100달러, 참사·공사는 700∼90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고 털어봤다. 현재 물가수준이나 외교관이란 위상으로 볼 때 가족 등과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운 돈이다.
 
북한의 불법적인 외교활동에 대해 미국은 대북제재 차원의 강한 압박을 예고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유엔회원국들에게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정지(suspend)하거나 격하(downgrade)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