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인 신부가 살고 있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마을 입구에 마을 회관이 보인다. 마을 회관 뒤쪽에 송 신부가 머무는 한옥(사제관)이 있다.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살고 있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마을 입구에 마을 회관이 보인다. 마을 회관 뒤쪽에 송 신부가 머무는 한옥(사제관)이 있다. 위성욱 기자

지난 11일 오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마을. 마을회관 위쪽 한옥(사제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생전에 ‘정신적 지주’라 부른 송기인(79) 신부가 산다. 문 대통령 내외는 지난 9일과 11일 잇따라 송 신부에게 전화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각별한 정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어머니 강한옥(90) 여사도 지난달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송기인 신부님처럼 좋은 분들 만나서….”라며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2005년 12월 사목(司牧)직을 은퇴하고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인근에 있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 김범우(1751~ 1787) 묘를 지키는 ‘능참봉(陵參奉·조선시대 능을 지키던 벼슬)’을 자처하고 있다.
 
송기인 신부가 살고 있는 한옥(사제관).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살고 있는 한옥(사제관).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설명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설명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기자가 거실로 들어섰을 때 송 신부는 거실 의자에 앉아 청와대 인사를 발표하는 TV뉴스를 보고 있었다. 송 신부는 인터뷰 내내 문재인 대통령 관련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 당선을 예상했나.
“이번 선거는 촛불이 한거다. 촛불이 유발했고 그래도 촛불을 따르는 사람은 문 후보였잖아. 이번에는 문 후보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당선이 확정됐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가는 구나 생각했지.”
 
두 대통령과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문 대통령이 변호사 개업을 해야하는데 돈 한푼 없고, 사무실을 열 수도 없었어. 마침 노무현 변호사가 개업을 하고 있어서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됐지. 문 대통령이 82년에 변호사로 첫 출발을 했고, 그 때 내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처음 만났고.”
 
송 신부는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피의자의 변론을 노 전 대통령에게 맡겼다고 한다. 문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동지(40p)’에서 여러 차례 송 신부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사도 바울의 제자인 ‘디모테오(하느님을 공경하는 자)’다.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 마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와의 인연을 말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 마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와의 인연을 말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문 대통령 가족과의 인연은.
“어머니(강한옥·90)가 내가 있던 성당(영도구 신선성당)의 독실한 신자였어. 비록 어머니와 (문 대통령이)같은 아파트에 안살지만, 내가 보기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와서 문안 드리고 생활비 드리고 그래.”
  
송 신부는 문 대통령과의 인연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쭉 지켜본 문재인은 원래 권력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내가 계속 정치하라고 했는데 속으로 좀 미안했지. 그런데 ‘박근혜가 정치를 너무 못해서 저라도 할랍니다’며 갑자기 한다더라고.”   
 
문 대통령 모친과 추억이 많다고.
“천주교는 사순절 등에 담당신부가 신도 집을 방문하는데, 모친이 그 동네 안내하는 구역장이었어. 그때 환갑이 지난 모친이 까만 양장을 하고 수첩을 들고 동네신도의 집안 내력을 상세히 알려 주는거야. 나이도 많은 분이 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미스 강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나한테 전화 할 때 먼저 ‘미스강 입니다’ 그래.”
 
지금도 연락하나.
“지금은 말이 잘 안돼. 연세가 많으니까. 걷기도 힘들고. 조금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처가 전화가 왔었어. 내가 바쁠건데 라며 전화 끓어라 했어. 그런데도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요’ 하며 통화했지. ‘내가 어머니나 여기 걱정 하지 말고 거기나 충실해라’며 끊었어.”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 마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와의 인연을 말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 마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와의 인연을 말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두 사람 모두 아주 정의로웠지.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자기가 무슨 결정을 내리면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들으려 했어. 내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일 때 청와대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더라고. 반면 문 대통령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야. 자신의 생각이 있어도 일단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을 줄 알지, 그게 차이점이지.”
 
송 신부는 문 대통령 가족이 스킨 스쿠버를 좋아했다는 얘기도 했다. 인근 바다에 자주 가서 문 대통령이 작살로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공과가 있다면.
“자기 권력을 부서에 나눠줘 버린 것, 그건 노무현 이전까지 누가 상상도 못하던 일이야. 문 대통령도 그럴것 같아. 권력을 자기 편리하게 이용하고 그럴 생각은 (문재인이) 전혀 안할 거야. 과라고 하면  박연차 회장의 돈을 다른 사람을 통해 받은 건데, 대통령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지. 부인이 받았으면 저녁에 뭐라고 얘기를 했겠지. 내가 청와대 가기 전에 3가지 잘 지키면 청와대 잔소리하러 안가겠다고 했는데. 돈 모으지 마라, 보안법 등을 개혁해라, 가족을 특별 감옥에 가두라고 했지 ”
 
문 대통령은 어떨까요.
“문 대통령은 남녀동생 두명이 있는데 선장하는 남동생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각자 따로 살고 있으니까 그런 걱정 없고, 여동생도 어머니 모시고 살고 있어서 가족들은 그런 일 없을거야. ”  
   
 -문 대통령을 선거 과정에는 안 만났나.
“투표 전날 부산 서면에 가서 문 대통령과 무대 밑에서 악수했는데 사람들이 떠밀어서 함께 연단에 올라가 엄지손가락 올려 세우며 ‘문재인, 대통령을 서너번 외쳤지.”
 
 -총리 후보자 내정하고, 수석도 뽑고 국정운영에 들어갔는데.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 내 생각하고 똑같애, 너무 오랫동안 같이 싸우고 의논하고 토론했기 때문에 더 보탤 말은 하나도 없어.”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 마당에 핀 꽃과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송기인 신부가 머물고 있는 한옥(사제관) 마당에 핀 꽃과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잘 할 것 같나.
“최선을 다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국격을 회복시킬 거야.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할 수준까지 끌어올 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드 문제도 평양에서 서울 공격하면 김천에서 사드를 쏘았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어. 미국 전문가들도 막을 수 없다고 하잖아. 전시 작전권도 가져와야 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재인이는 경제적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의 주권을 지키고 국격을 높일 거야.”
   
문 대통령이 취임직후 기존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만한 대통령을 만났다는 것은 늦었지만 행운이라고 생각해. 촛불 때문에 당선 됐으니 자신을 태워서 남을, 어두운 세상을 밝혀 줄 거야. 실과 몸통이 전혀 다른 이질적 물질이지만 함께 타올라 어둠을 환하게 밝히잖아. 문 대통령도 여야와 국민들을 잘 화합해 국정운영을 잘 할거야.”
 
송기인 신부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다. 1972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곧바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참여해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 1989년 8월 부마항쟁 10돌을 앞두고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이사장을,이어 노 정부시절인 2005년 12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위원장 재직시 2년간 급여 1억97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기부했다.
 
밀양=위성욱·김포그니 기자 we@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