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오전(한국 시간) 반기문(73)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동아시아 분야 세계적 석학 에즈라 보겔(87) 하버드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월간중앙이 기획한 특별 대담을 통해서다. 보겔 교수는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한·중·일 3국의 정치와 경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깊이 연구했다.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그의 혜안은 정평이 나 있다.  
 
반 전 총장과는 1980년대 초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다. 외교부 연수생 신분으로 하버드에 유학 온 반 전 총장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반기문처럼 매일 꾸준히,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보겔 교수의 회고다.  
 
반 전 총장의 하버드대 직함은 앙겔로풀로스 펠로우(Angelopoulos Global Public Leaders Fellow)다.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하버드에 머물면서 연구·강연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멕시코·핀란드의 전직 대통령들도 앙겔로풀로스 펠로우로 하버드에 머문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4월 8일 하버드대에 도착한 뒤 바쁜 일정을 보냈다. 지난 3주간 에즈라 보겔, 조지프 나이, 그라함 앨리슨 같은 하버드의 석학들과 만났다.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로버트 스타빈스(Robert N. Stavins) 하버드대 교수와 공동으로 미국의 파리기후변화 협약 준수를 촉구하는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오른쪽)과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특별대담은 5월 3일 오전(한국 시간) 미 보스톤 소재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내의 반 전 총장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Paul Huang]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오른쪽)과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특별대담은 5월 3일 오전(한국 시간) 미 보스톤 소재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내의 반 전 총장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Paul Huang]

 
 
반 전 총장과 보겔 교수는 위기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정세, 트럼프 시대의 한·미·일 동맹, 북핵과 사드배치 문제 등 현안을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반 전 총장은 당사국인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보겔 교수는 북한의 공포심에 대한 이해와 진지한 대화 제의를 각각 강조했다.[대담 전문(全文)은 5월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6월호에서 읽을 수 있다]
 
"북핵 당사국은 한국...새 대통령, 리더십 공백 서둘러 메워야"
 
칼빈슨 항모의 전개,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반기문=북한은 21세기에 핵실험을 한 유일한 국가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탈퇴한 최초의 국가다. 21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규범파괴자’라 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핵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의 정치 리더십이 공백상태라는 점이다. 새 대통령이 빨리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미·중 회담이 상호 협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보겔=중국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좋은 정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과 일본이 전역(戰域) 미사일방어체계를 개발하는 등 한·미·일 3국은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식인의 관점에서 지난 미국 대선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트럼프의 조심성 없는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행정부 내에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같이 국제관계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극단적인 생각을 저지하며 진정한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어갈 이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트럼프가 잘하고 있는 것도 있다. 정책에 상관없이 국가지도자들을 만난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은 이 점을 간과해왔다. 트럼프는 아베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시진핑과 좋은 회담을 했다. 미국에 부정적인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도 만날 의지를 보인다. 정상 간의 좋은 개인적 관계와 행정부 고위 관료의 합리성을 조합한다면,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중 회담에서 시진핑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수천 가지가 있으나 그렇지 않을 이유는 한 가지도 없다”고 발언한 것은 고무적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특별대담에 앞서 월간중앙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한국에서 진행 중인 대선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지난 2월 1일의 불출마 선언의 취지에 비춰볼 때 정치 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내 외교적 경험과 국제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새 정부의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Paul Huang]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특별대담에 앞서 월간중앙에보낸 메시지를 통해"한국에서 진행 중인 대선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지난 2월 1일의 불출마 선언의 취지에 비춰볼 때 정치 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내 외교적 경험과 국제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새 정부의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Paul Huang]

국제사회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단결해야 하나. 한·미·일과 중국의 역할은?  
 
 
"북핵 문제는 새 대통령과 정권의 최우선 순위"(반기문)
 
=우선 모든 국제사회가 완전히 단결하여 북한에 분명하고 엄중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협조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협조다. 중국이 얼마나 성실하게 관련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이행하는가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과 2321은 국제사회를 향해 내가 항상 인용해온 중요한 결의안들이다. 북한 문제를 다뤄온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두 결의안,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21은 가장 포괄적이고 완전한 제재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북한의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직접적인 당사국으로서 한국 정부는 새로운 대통령이 모든 외교적, 정치적 자원을 동원해 북핵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 북핵 문제는 새로운 한국 대통령과 정권의 최우선 순위이며 미국·중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진행돼야 한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월간중앙 대담에서 최근의 트럼프 정부의 북핵 문제 대응과 관련해 "군사적 해결책은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며 "강력한 유엔 제재에 미국과 중국이 협조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관리는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진 Paul Huang]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월간중앙 대담에서 최근의 트럼프 정부의 북핵 문제 대응과 관련해 "군사적 해결책은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며 "강력한 유엔 제재에 미국과 중국이 협조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관리는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진 Paul Huang]

보겔=우리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노력이 부족했다. 상대방의 우려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자국에 대한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겁을 먹고 있으며 핵무기를 통해서만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오직 핵무기만이 한국에 비해 약한 경제력과 군사력에 대응할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 입장에서 미국을 바라보자면, 미국은 과거 경수로를 비롯해 모든 약속과 책임을 이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 결과 북한은 미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군사적 해결책은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북한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쉬운 해답은 없다. 반 전 총장의 조언대로 강력한 유엔 제재에 미국과 중국이 협조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관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에즈라 보겔)
 
전직 유엔사무총장, 외교부장관으로서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가?
 
=나는 1990년대 북핵 문제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북핵 문제를 다뤄왔다. 전직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북핵 문제의 시발점부터 관여해왔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차기 대통령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는다면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나의 모든 경험, 비전과 노력을 다할 것이며 미국·중국·일본과 같은 중요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배치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과연 그런가.  
 
보겔=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 분담에 대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은 다행스럽게도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학자들은 소위 ‘성인의 감독(adult supervision)’이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경험과 지혜가 많은 이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안타깝게도, 현 시점에 미국은 중요한 위치에 필요한 사람들을 모두 임명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미국에 신뢰감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험과 경륜이 많은 이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믿는다.  
 
=평화와 안보에 있어 한국민들은 미국민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한국전쟁 당시 약 3만3000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엔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이끌어 낸 미국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2년에서 1993년까지 나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한국 대표직을 맡았다. 그 이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과 관련된 일정 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미국이 100%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그 당시 우리는 자급자족할 역량이 없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오른쪽)과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대담을 마치고 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Paul Huang]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오른쪽)과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대담을 마치고 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Paul Huang]

한국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미국 정부는 일정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청했다. 소파 협정의 미국 측 대표는 미7공군 사령관이었는데, 당시 기본 합의는 전력 전개와 운영, 유지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고 한국 정부는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사드를 예로 들자면, 한국 정부는 사드의 부지를 제공하고 시설과 관련된 일정 수준의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한다. 하지만 실제 작전 운용과 사드 포대 자체는 미국 정부의 부담이다. 1990년 초 이후 소파 협정에 관여한 바는 없지만,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협정이다.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를 재확인했다. 이 같은 문제로 양국 간 오해가 빚어져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 외교정책 추진을 힘껏 돕겠다"(반기문)  
 
한편, 반기문 전 총장은 대담에 앞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소회를 조심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월 1일 불출마선언의 취지에 비춰볼 때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 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저의 외교적 경험과 네트워크를 동원해 새 정부의 외교정책 추진을 힘껏 돕겠다”고 말했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톤=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