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삼지연 8인 그룹’. 왼쪽부터 한광상 군 중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사망), 김정은, 현지 관계자,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삼지연 8인 그룹’. 왼쪽부터 한광상 군 중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사망), 김정은, 현지 관계자,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 [사진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권력의 핵심 실세 중 하나인 김원홍(72)이 국가보위상 해임 석 달여 만에 기사회생했다. 지난 1월 문책성 계급 강등 조치를 당한 뒤 가택연금설까지 나왔던 그가 15일 김일성 출생 105주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것이다.
 
김원홍은 일명 ‘주석단’으로 불리는 단상에 올라 김정은(33) 노동당 위원장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봤다. 최부일 인민보안상과 나란히 자리해 신상에 큰 변동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원홍의 복권은 이례적으로 빠르고 전격적이었다. 대북정보 당국은 회복이 어렵거나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김원홍 숙청설이 나오자마자 통일부가 공식 브리핑을 통해 “1월 중순 경 노동당 조직지도부 조사를 받고 대장(별 4개)에서 소장(북한군 계급은 별 1개)으로 강등당한 뒤 해임됐다”고 확인했다. 그만큼 첩보에 자신있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입수된 정황이 잘못됐다기보다 김정은이 보호막을 쳐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주석단에 숙청설이 제기됐던 김원홍(빨간 원)이 대장(별4개) 계급장을 단 채 등장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주석단에 숙청설이 제기됐던 김원홍(빨간 원)이 대장(별4개) 계급장을 단 채 등장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김원홍의 조기복귀 배경은 뭘까. 대북 소식통은 24일 “후계자 지위가 확고하지 않던 시절 김정은 쪽에 일찌감치 줄을 선 김원홍에 대한 끈끈한 신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의 지위는 다소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김정일 사망(2011년12월) 이후 상당 기간 후견인 격인 고모부 장성택 쪽으로 힘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럴 때 위험을 무릅쓰고 김정은 편에 선 게 김원홍이다. 소식통은 “우리 정치로 말하면 김정은 캠프에 가장 먼저 몸을 던진 원조멤버”라고 김원홍을 설명했다.
 
김정은은 이런 김원홍을 각별히 챙겼다. 집권 첫 해인 2012년 4월 국가안전보위부(국가보위성의 전신) 책임자에 앉히고, 노동당 정치국원과 국방위원 직함을 줬다. 같은해 11월에는 보위부를 직접 방문해 힘을 실어줬다. 두터운 신임을 뒷심 삼아 보위조직을 장악한 김원홍은 이듬해 12월 장성택 처형 때 뒷탈없는 깔끔한 일처리로 화답했다. 장성택 숙청 한달 전 대책을 논의한 백두산 삼지연 8인 회동의 핵심멤버가 김원홍이다.
 
보위성은 최고지도자와 북한 체제를 지키는 기둥으로 여겨진다. 1973년 ‘국가정치보위부’로 출범해 국가보위부(1982년), 국가안전보위부(1993년)로 개칭됐고 지난해 국가보위성이 됐다. 반체제 사범 단속과 정치범 수용소 관리, 해외공작 등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김정일은 오랜기간 보위부장 자리를 공석으로 뒀고, “보위부는 나의 조직”이라고 언급해 보위부장을 겸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원홍이 김정은 위원장의 인사를 받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김원홍이 김정은 위원장의 인사를 받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일 집권 말기 보위부는 큰 위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밀사로 서울에 왔던 보위부 부부장 유경이 반(反)체제와 부패혐의로 공개처형되면서다. 대북 소식통은 “유경이 숙청당한 건 남한에서의 행적보다 권력 내 알력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비밀파티에 단골이던 유경은 당시 보위부 책임자이던 우동측 제1부부장(부장은 공석)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보위부에 대한 당적(黨的)통제를 담당한 김창섭 보위부 정치국장은 이를 괘씸하게 여겼다. 당 조직지도부 8과(검열담당) 과장이던 김창섭은 보위부 장악 목적으로 파견됐다. 결국 유경은 검열을 받았고, 가택수색 때 200만달러가 나온 점을 들어 “여차하면 해외로 탈북·망명하려했다”는 혐의가 씌워졌다는 것이다.
 
김원홍의 이번 위기도 보위성과 당 조직지도부의 해묵은 갈등 때문이란 분석이다. 보위성 권한이 세지면서 당 간부에게까지 칼을 휘둘렀고, 중앙당 과장이 고문받다 숨지는 사태가 벌어지자 조직지도부가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이번 검열은 보위부 정치국과 당 조직지도부의 합동 방식이었다”며 “김원홍이 정치국을 억눌러온데 대한 앙갚음”이라고 말했다.
 
일단 복귀에 성공했지만 몰락의 문턱까지 갔다온 김원홍이 예전처럼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열병식 자리에서 김정은과 마주친 김원홍은 예전과 달리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김원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김정은이 뭐라 말을 던졌지만 다른 간부들에게 건넨 것과 같은 악수는 없었다.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국가보위성의 어제와 오늘
1973년 …………… 국가정치보위부로 출범
1982년 …………… 국가보위부로 개칭, 정무원에서 분리
1993년 …………… 국가안전보위부로 명칭 변경
2012년 4월 …………… 김원홍 부장 임명
2013년 12월 …………… 장성택 숙청 주도(삼지연 8인방)
2016년 5월 …………… 국가보위성으로 명칭 변경
2017년 1월 …………… 김원홍 숙청설(강등 및 혁명화 교육)
4월 ……………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 단상 등장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