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은 17일 하루를 파김치가 된 몸으로 보냈다. 나른한 봄날 찾아오는 월요병 때문이 아니다. 지난 주말 김일성 생일 105주(4월15일)를 맞아 치른 대규모 열병식 군중 동원과 지방 곳곳에서 열린 관련 행사가 그 이유다. 
 
 
15일 김일성 출생 105주년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대회 장면. 수 십 만명을 동원해 노동당 상징 마크와 '결사옹위' 글자를 나타냈다. [노동신문]

15일 김일성 출생 105주년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대회 장면. 수 십 만명을 동원해 노동당 상징 마크와 '결사옹위' 글자를 나타냈다. [노동신문]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와 군중대회에 참가한 주민들은 행사 내내 ‘인간 선전물’이되다시피 했다. 형형색색의 꽃술이나 조형물을 든 수 십 만명 규모의 군중들이 노동당 상징마크나 '결사옹위' 등의 구호를 수놓는 방식이다.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신형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대거 등장시키는 것과 함께 광장 전체를 선동성 구호를 새기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광장 열병식 행사가 벌어지는 내내 꽃다발을 들고 ‘김일성’, ‘김정일’, ‘결사옹위’, ‘당 마크’, '태양절' 등 인간구호판을 만드는 사람을 '광장 바닥행사 성원이라고 부른다.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장명. 동원된 수 십 만명의 주민들이 김일성 생일을 의미하는 '태양절'이란 글자를 나타내고 있다.[조선중앙TV 캡처]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장면. 동원된 수 십 만명의 주민들이 김일성 생일을 의미하는 '태양절'이란 글자를 나타내고 있다.[조선중앙TV 캡처]

 
이들 바닥행사 성원들은 직장인들이거나 인민반(우리의 통·반과 비슷한 조직)에서 동원 지시를 받아 나온 사람들이다. 중앙당 선전선동부와 평양시당 행사과의 지시에 따라 중앙기관들을 비롯한 직장들, 인민반들에 행사 인원이 배당된다.  
 
각 단위의 당 위원장들을 책임자로 해서 행사훈련조직을 만들고 하루일이 끝난 후 매일 저녁 김일성광장에 모여 밤늦도록 훈련한다. 열병식 석 달 전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훈련은 일요일이나 휴일도 예외가 아니다.  
 
훈련성원들은 준비기간 가슴에 광장대열의 위치(행·열)를 가리키는 표시판을 단다. 그리고 훈련에 참가하는 모든 성원들은 빨간·파랑·노란색·분홍·흰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을 준비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재질의 꽃다발은 40cm 이상의 길이와 너비를 가지는 크기로 해서 4∼5개를 양손에 전부 들 수 없다. 그래서 행사 동원 주민들은 긴 끈으로 꽃다발을 묶어 목에 걸친다.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중대회에서 평양 주민들이 노동당 기와 꽃술을 들고 환호하며 행진하고 있다. [노동신문]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중대회에서 평양 주민들이 노동당 기와 꽃술을 들고 환호하며 행진하고 있다. [노동신문]

 
훈련은 광장 지붕 쪽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대열이 움직이거나 혹은 꽃 색깔을 선택하여 순식간에 꽃다발을 들고, 흔들고 하는 연습이다. 훈련에 집중하지 않고 옆 사람과 같은 색의 꽃다발을 올리면 새기려는 글자가 틀려지기 때문에 금세 들통 나버리고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매일 또는 매주 훈련과정을 당적인 사업으로 ‘총화’(비판 및 결산)하므로 훈련에 결석하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책임자에게 담배 등 뇌물을 주고 빠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김일성광장은 평양 중심가인 중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먼 곳에서 매일 4∼5개의 커다란 꽃다발 꾸러미를 들고 훈련 다니기는 엄청 힘들다. 많은 행사성원들은 하는 수 없이 광장 주변의 개인집들이나 상점들에 돈을 주고 꽃다발 꾸러미를 맡긴다.
 
이런 오랜 기간의 훈련과정을 거친 수 만 명에 달하는 ‘바닥행사’ 군중들이 15일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 3시간에 걸쳐 오직 신호기만을 주시하며 북한 당국이 의도하는 거대한 정치선전물을 만들어냈다.
 
15일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환호에 답하고 있다. [노동신문] 

15일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환호에 답하고 있다. [노동신문]

 
이번 열병식 당일은 물론 이튿날까지도 평양 시민들은 편히 쉴 수 없었다고 한다. 만수대동상 꽃다발 증정이나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경축 공연’ 관람,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문, ‘4·15기념 체육대회’, 김일성화(花) 전시회 방문, 각종 야회(야간 축제행사) 등 모든 것을 조직별 행사로 진행하다 보니 지난 주말 주민들의 피로가 겹쌓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행사에 참가했던 많은 평양 시민들은 "실컷 자는 것이 소원"이라고 피곤함으로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17일 출근하자마자 그들을 기다린 건 조직별로 진행하는 '김정은 동지께 다지는 충성의 선서모임'이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행사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