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요즘 ‘만리마(萬里馬) 속도’ 열풍이 거셉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기치를 든 일종의 속도전식 생산성 향상 캠페인이라 할 수 있는데요. 올해 말에는 만리마선구자대회를 열어 총결산을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죠. 지난 13일자 노동신문에는 “모두 다 만리마 선구자의 긍지 드높이 승리의 대회장에 떳떳이 들어서자”는 격문성 사설이 1면 머리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만리마 속도는 김일성 집권 시기 기세를 떨친 천리마운동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전후(戰後) 복구 건설 시기인 1956년 12월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당시 수상이 ‘사회주의 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하여’란 연설을 통해 주창했는데요. 한때 우리 귀에도 익숙했던 ‘천 삽 뜨고 허리펴기’나 ‘새벽별 보기’ 등이 모두 천리마운동에서 파생된 노력경쟁 운동입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5일 완공을 앞둔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여명거리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5일 완공을 앞둔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여명거리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천리마는 본래 하루에 천리(千里·약 400㎞)를 내달릴 수 있을 정도의 준마를 일컫습니다. 이 말처럼 쉼없이 산업생산이나 건설에 매달려 목표를 초과 달성하자는 게 북한의 취지일 텐데요. 천리마운동은 북한 사회와 경제현장을 반 세기 넘게 지배했습니다. 대중잡지 『천리마』가 등장하고, 천리마구역·천리마작업반·천리마속도 같은 말이 넘쳐났습니다. 순안비행장에 내려 평양 시내로 들어가다보면 제일먼저 마주치는 게 날개가 달린 천리마 동상입니다.
 
그런데 천리마로는 뭔가 부족했나 봅니다. 김정은이 지난해 5월 열린 7차 당 대회에서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달리는 만리마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하면서 천리마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북한은 “천리마가 남을 따라 앞서기 위한 비약의 준마였다면, 만리마는 세계를 디디고 솟구쳐오르기 위한 과학기술 용마”(노동신문 3월 21일자)라고 주장합니다. 김정은 시기 통치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만리마속도가 올라선 느낌입니다.
 
33살 젊은 통치자 김정은은 유독 속도전에 집착하는 모습입니다. 집권 초기 들고나온 ‘마식령속도’는 그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강원도 원산 인근 마식령(馬息嶺) 지역에 12개의 슬로프를 가진 대규모 스키장을 불과 몇 달 만에 속성 건설한 데서 따온겁니다. 2013년 봄 착공해 연말까지 완공하라고 김정은이 지시하자 해당지역 5군단 병력이 총동원돼 밤샘작업까지 벌였다는데요. 결국 그해 12월 31일 김정은이 참석한 완공식을 가까스로 치렀죠. 관광객 유치 실패로 지금은 흉물로 돼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과속 드라이브는 계속됐습니다. 평양 용남산구역에 짓고 있는 뉴타운 여명거리가 대표적입니다. 연 건축 면적이 172만㎡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에 초고층 건물까지 들어서는 이 공사는 당초 지난해 연말 끝낼 목표였죠. 하지만 완공이 지연되자 김정은이 올들어 두 차례나 현장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가 김일성 출생 105주년인 4월 15일까지 완공할 것을 지시하면서 공사 관계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명거리 건설은 미제와의 치열한 대결전”
 
북한은 여명거리 70층 주상복합 건물의 외벽타일 공사를 불과 13일 만에 끝내는 등 “기적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날림공사 우려가 나오고 있죠. 마치 1950~60년대 북한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부실공사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겁니다. 당시 북한은 ‘평양속도’를 내세워 “14분 만에 집 한 채를 지었다”고 선전했는데요. 7000세대분 공사 자재로 2만 가구를 지었다는 발표를 내놓기도 했죠.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이미 부실공사로 참사가 빚어진 적이 있습니다. 2014년 5월 평양 평천구역에서 23층 신축 아파트 붕괴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난겁니다. 당시 위성사진 등으로 상황이 공개되고 입소문이 퍼지자 북한도 할 수 없이 관영매체를 통해 사고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죠.
 
최근에는 만리마속도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기 위한 움직임으로 선전하며 체제결속에 활용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는데요. 김정은이 직접 “여명거리 건설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노동신문이 “수소탄을 백 발, 천 발 쏜 것보다 더 위력한 대승리가 이룩된 곳”이라며 여명거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차질없이 돌아간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북한의 속사정은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집권 5년여 동안 이어진 속도전식 노력경쟁에 주민들은 무척 고단해 보입니다. 지난해의 경우 연초부터 70일전투를 벌였고, 5월 노동당 대회를 마친 뒤엔 곧바로 200일전투에 나서야 했죠. 일년 열두 달 중 9개월을 ‘마른 수건도 짜는’ 식으로 시달린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무한속도로 달릴 것을 채근하고 있습니다. 관영매체를 통해 “현실은 전체인민이 천리마 대진군 때보다, 지난해의 70일전투와 200일전투 때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총 결사전을 벌여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노동신문 3월 13일자)고 압박하고 있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핵·미사일 도발이 자초한 대북제재 여파로 민생은 훨씬 피폐해졌죠. 주민들 사이에는 “우릴 먹여살리는 건 노동당이 아니라 장마당”이란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고 합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