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이뤄진 지난 10일 이후 북한 노동신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탄핵 사태와 관련한 사진이 지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촛불시위 인파와 탄핵 요구 플래카드 영상을 무더기로 싣고 주민들에게 ‘남조선 정국 혼란’을 전달하려 애쓰던 이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탄핵결정 이튿날 노동신문은 남한 정세를 다루는 제5면(전체 6면 발행) 중간에 ‘남조선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 최종선고’라는 기사를 자그맣게 싣는데 그쳤다. 딱 세 문장에 불과했다. 관련 기사의 양도 확 줄었다.
 
이런 모습은 탄핵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것과 큰 차이가 난다. 노동신문은 헌재의 탄핵 결정 하루 전인 9일자에 “보수진영에서도 탄핵 가능성은 100%라는 비명이 터져나온다”고 전하는 등 전례없이 상세하게 분위기를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청와대 악녀’, ‘역도’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방을 퍼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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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에 공을 들여온 북한은 정작 가결 이후엔 속도조절에 나선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태도를 두고 “엄청난 후폭풍을 우려한 때문”(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이란 해석이 나온다. 노동당과 군부의 엘리트 세력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자유민주 국가인 남조선에서는 대통령도 잘못하면 인민들에 의해 탄핵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되는 상황을 북한 당국이 우려한 때문이란 얘기다.
 
이런 위기감은 북한 관영매체들이 석달 넘게 탄핵 사태 보도를 이어오면서 점차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백만명 규모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최고지도자와 집권당의 부패와 실정(失政)을 성토하는 모습이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부담스러워 했을 것이란 점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2010년 튀니지에서 촉발돼 아랍 국가 등을 휩쓴 재스민 혁명을 가까스로 차단한 북한 정권으로서는 위기감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서는 최근 평양 안팎의 상황마저 녹록치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지난해 태영호 주영 북한 공사의 탈북사태로 해외 엘리트층의 동요가 만만치 않은 상태에서 최근엔 내부도 뒤숭숭한 형국이다. 1월 중순 노동당 조직지도부 주도로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강등·연금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권력 핵심이 술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이복형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당하는 사태의 배후로 김정은이 지목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눈치빠른 간부층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권력을 위해 피붙이를 죽인 잔혹한 지도자”란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 공안기관이 북·중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외국과 휴대전화 메시지로 사진이나 글을 주고받는 걸 단속하는 등 통제의 고삐를 죄고 있다는 소식도 들여온다.
 
북한은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사태 때는 “탄핵 저지투쟁에서 승리했다”며 반색했다. 그리고는 “이런 기세와 기백으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배를 끝장내기 위한 반미·결사항전에 나서야 한다”며 대남 선동을 펼쳤다. 이번의 경우 남한 내 보수층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13일자 노동신문은 ‘끝까지 청산해야 할 반역무리’란 기사에서 “괴뢰 보수정권과 역도의 졸개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를 남한 내 반(反)보수 분위기 조성에 적극 활용할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거친 표현들 속에서는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깐깐한 대북정책과 대북압박에 시달린 것에 대한 앙갚음이 배어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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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오던 시간, 북한 김정은은 평양의 백두산건축연구원을 방문했다. 2012년 집권 이후 몰두해온 평양시 초고층 빌딩 건축과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 등 체제선전성 시설물을 도맡아 설계해온 곳이다. “노동당이 맡긴 설계과제를 훌륭히 수행했다”며 만족스런 웃음을 보인 김정은의 모습은 이튿날 노동신문 1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이 처한 상황을 볼때 고민거리 또한 적지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촛불을 즐기고만 있을 때가 아니란 얘기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