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 UNIST 교수가 9일 ‘똥본위화폐’ 실험실 사월당 안의 화장실에서 물 안 쓰는 변기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양변기 아래 설치된 건조기·분쇄기를 통해 대변을 가루로 만들고 이를 미생물 에너지 생산시설에서 난방과 식당 조리기구의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메탄가스로 변환시킨다. [사진 송봉근 기자]

조재원 UNIST 교수가 9일 ‘똥본위화폐’ 실험실 사월당 안의 화장실에서 물 안 쓰는 변기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양변기 아래 설치된 건조기·분쇄기를 통해 대변을 가루로 만들고 이를 미생물 에너지 생산시설에서 난방과 식당 조리기구의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메탄가스로 변환시킨다. [사진 송봉근 기자]

‘똥 누고 돈 벌고, 환경도 살리고…’.
 
인분(人糞)을 바이오에너지로 바꾸고 그 가치만큼 화폐처럼 사용하는 프로젝트에 국가 연구개발(R&D) 자금 100억원이 투여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똥을 돈으로 사용하는 ‘똥본위화폐’란 개념을 제시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사이언스 월든(Science Walden)’ 프로젝트에 올해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연구비 100억원을 지원한다고 9일 발표했다. 과학기술·인문사회·경제·예술 등 다학제 융합연구를 수행하는 미래부 ‘융합연구선도연구센터(Convergence Research Center)’ 사업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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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책임자인 조재원(54)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워낙 이례적인 연구 아이디어라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100억원짜리 국가 연구프로젝트에 선정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똥본위화폐’다. UNIST는 지난해 5월 문을 연 야외체험 실험실 ‘사월당(思越堂·일명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에 인분을 분해해 에너지로 만드는 ‘비비(BeeVi) 화장실’을 설치했다. 비비 화장실은 물을 쓰지 않고 양변기 아래 설치된 건조기와 분쇄기를 통해 대변을 가루로 만들고, 이를 미생물 에너지 생산시설에서 난방과 식당 조리기구의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메탄가스로 변환시키는 친환경 화장실이다. 비비 화장실 사용자에게는 ‘꿀’이라는 이름의 사이버 화폐가 지급된다. ‘비비(BeeVi)’란 이름은 벌(bee)과 비전(vision)의 첫 음절을 따 만들었다. 한 번 화장실을 이용하면 ‘10꿀’을 받는다. 10꿀의 현재 가치는 500원이다.
 
UNIST는 에너지 효율성 증대 등을 통해 2020년까지 10꿀의 가치를 3600원으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똥본위화폐는 현재 UNIST 캠퍼스 내 일부 카페에서 화폐로 사용할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한 번 배설한다고 가정하면 한국인이 창출하는 가치는 9조원에 달한다.
 
조 교수는 “인분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고 이를 화폐나 에너지로 사용함으로써 인분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며 “세계 최초로 제시된 똥본위화폐는 환경 순환 경제의 원동력은 물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이언스 월든 연구팀은 지난해 비비 화장실에 이어 올 하반기까지 캠퍼스 내에 ‘생활형 실험실(Living Lab)’을 건설할 계획이다. 생활형 실험실은 주거가 가능한 연구실로, 비비 화장실이 설치된 약 5평 크기의 주거 공간 3실과 인분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비를 갖춘 바이오센터, 바이오 에너지 식당 등으로 구성된다. 연구자는 이 공간에서 인분이 난방·온수·연료로 활용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며 연구한다. 또 비비 화장실 변기에는 소변의 산도(pH) 체크, 당·단백질 농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설치해 건강상태도 점검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철학·디자인 등 다양한 연구진 참여
 
프로젝트의 우선 목표는 똥본위화폐의 개념을 보다 정밀하게 설정하고, 시범 운영하는 것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똥본위화폐를 마을과 도시로 확대해 취약층의 사회복지와 청년층의 기본소득을 지원할 수 있는 대안 시스템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사이언스 월든만의 새로운 도시계획 디자인을 제시해 똥·에너지·삶이 순환하는 환경 경제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며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거리감을 예술을 통해 감소시키는 등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연구팀에는 환경공학뿐 아니라 철학·미술·경제학·디자인·도시공학 등을 전공한 다양한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어 융합을 통한 창의적인 연구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