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양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을 추적 중인 한·미 대북 감시망에 최근 눈길을 끌만한 첩보 하나가 입수됐다. 새해 벽두부터 불어닥친 숙청 바람을 두고 북한 고위 인사가 “직계(直系) 분께서 벌인 일”이라고 발설했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서는 지난달 중순 김원홍(사진) 국가보위상이 대장(별 넷)에서 소장(북한군은 별 하나)으로 강등당한 뒤 전격 해임되는 등 사태가 벌어졌다. 권력 최고실세 중 하나인 국가보위성(옛 국가안전보위부) 책임자를 하루아침에 몰락시킬 정도의 힘을 거머쥔 인물을 ‘직계 분’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북한에서 직계란 ‘핏줄이 한 줄기로 곧게 이어내린 갈래로, 할아버지·아버지·나·자식·손자로 내려가는 갈래’(2007년판 조선말대사전)를 의미한다. 정보 당국은 추가 첩보를 통해 ‘직계 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36)을 지칭한다고 잠정 결론내렸다. 김정철은 김정은(33) 노동당 위원장의 친형으로, 호르몬계 질환 등 건강상 문제로 후계자리를 동생에게 내준 것으로 알려져왔다.

 
대북 소식통은 27일 “김정철이 보위성 부상(副相·차관급)으로 김정은 체제 공안통치를 사실상 주도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보위부장에 앉은 김원홍은 이듬해 말 장성택(김정은 고모부) 처형 등을 전격적으로 처리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김원홍도 결국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정보위 직후 “(보위성이) 당 간부를 조사한 뒤 허위보고를 하다 들통났다고 국정원이 보고했다”며 “김정은이 격노해 김원홍을 연금한 채 강등시키고 (보위성) 부상 5명을 고사총으로 총살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너희(보위성)들은 장군님(김정일) 동상을 섬길 정도가 안 되는 놈들이니 동상도 다른 곳으로 치우라”는 지시도 했다. 김정일은 생전에 “보위부는 나의 조직”이라며 공석이 된 보위부장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김정일이 보위부장을 겸한다는 관측도 있었다.

북한 내 ‘직계’ 관련 언급이 불거진 상황에서 지난 13일 김정남(46) 암살 사건이 터지자 대북 정보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를 기획하고 실행토록한 인물이 김정철일 것이란 측면에서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남 살해를 결심한 김정철이 최고지도자인 동생 김정은의 최종 결심을 받았고, 말레이시아 현지 공작원과 보위성 직파 요원 등이 동원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2012년 내려진 김정남 살해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명령)가 이번에 결행된 건 태영호 영국주재 전 북한 공사의 탈북·망명 사태가 작용한 것이라고 한다. 태 전 공사의 김정은 비판이 큰 파장을 일으키자 북한 당국이 유일지배 구축에 걸림돌이 될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김정남은 그 1순위였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은 우리 정보 기관의 기존 판단과 차이가 난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정철이 술에 취하면 헛것이 보이고 호텔에서 술병을 깨고 행패를 부리는 등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다”고 밝혔다. 또 2015년에는 동생인 김정은에게 “제구실도 못하는 나를 한 품에 안아 보살펴 주는 크나큰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감시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출신 뮤지션인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겠다며 2015년 5월 런던을 찾은 것도 ‘권력에 욕심없다’는 시그널을 던지려는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판단과 궤를 달리하는 첩보도 적지 않다. 고위 탈북인사는 “김정은과 정철, 여동생인 김여정(28)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 3남매가 강원도 원산의 특각(별장)에서 휴양을 겸한 모임을 수시로 갖고 체제운용을 위한 주요 결정사항을 협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5월 스톡홀롬 북·일 합의 등 대일(對日)협상도 김정철이 관장하고 있으며, 서대하 보위부 부부장이 납치 일본인 관련 특별조사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란 얘기다.

김정남 사망으로 김정은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럽던 잠재적 도전세력이 사라졌다.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 태어난 정철·정은·여정 3남매 만이 남았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