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곁가지'는 최고지도자의 직계가족 이외의 친인척을 말한다. 전례 없는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이양한 북한에서 ‘곁가지’는 후계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백두혈통 로열패밀리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김정은의 이복형이자 김일성의 장손 김정남(46)도 김정은 체제에서 대표적인 ‘곁가지’로 분류된 인물이다.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채워진 북한의 정치사에서 최고지도자의 유일체제가 공고화되면 직계가족과 친인척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진다.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파들과 경쟁을 경험했던 김일성에게 친인척은 ‘피붙이’ 이상의 존재였다. 동고동락했던 정치적 동료들과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투쟁했던 그에게 ‘곁가지’를 포함한 친인척들은 믿을 수 있는 정치적 동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에게 권력을 이양 받아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후계자 입장에서 이들 ‘곁가지’는 언제든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고 공고화하기 위해서 항상 주시하는 경계대상 1호로 분류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아버지에게 권력을 상속받은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는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각각의 방법으로 ‘곁가지’를 숙청하며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후계자로 등극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후계자로 지목받기 위한 업적 쌓기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였다. 김정일은 우선 지병(신경부조화증)을 앓고 있던 삼촌의 건강을 특별히 챙긴다는 명분으로 김영주를 자강도로 보내버린다. 정치적 유배를 보낸 것이다.

삼촌과 달리 의붓어머니 김성애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김일성의 문서담당 비서 출신으로 뛰어난 외모와 능력을 가진 그녀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김정일 보다 12살 아래지만 아버지 김일성을 빼닮아 체구가 크고 영민한 그녀의 맏아들 김평일도 신경쓰이는 존재였다.

눈에 든 가시였지만 '수령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때를 기다리던 김정일에게 기회가 왔다. 당시 평양시당 책임비서였던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김일성과 불화가 생긴 것이다. 김성애와 측근들의 비위사실을 보고받은 김일성은 그들의 월권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다. 결국 김성애는 대외 행사에 나오지 못하는 근신처벌을 받고 측근들도 숙청당하고 만다.

1974년 2월 노동당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되며 정식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1981년 김평일을 유고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보내며 '곁가지'를 제거한다.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에게 잠재적 후보자의 존재는 불안감을 가져왔고 이들의 숙청을 통해 자신이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고 공고화 했다. 그는 물리적인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생명은 과감히 쳐낸 것이다.

20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은 아버지와 달리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권력을 물려받았다. 2010년 9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며 공식 후계자가 된지 약 2년여 만이다. 김정일 사망 2주 뒤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은은 이듬해 4월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리에 오르면서 순조롭게 권력을 승계했다.

하지만 김정은에게도 걸림돌은 있었다. 백두혈통의 장자인 김정남과 친형인 김정철이다. 한때 김정남은 북한의 왕자를 어렵지 않게 거머쥐는 것으로 보였다. 2001년 5월 김정남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분위기는 반전됐다. 체제와 백두혈통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돌았다. 방탕한 생활과 생모인 성혜림이 '서방 망명설'에 휘말리며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점차 밀려났다.

김정남의 탈락으로 김정일과 북송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 김정철이 후계자로 떠올랐으나 내성적인 성격과 건강상의 문제(교통사고 후유증 등)로 후계구도에서 멀어졌다. 후계자 시절 삼촌, 의붓어머니, 이복형제 등과 투쟁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아버지와 달리 김정은은 최고지도자에 올라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 하는 과정에서 '곁가지'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친인척은 아니지만 아버지 김정일의 운구자를 호위했던 군 실세 이영호 총참모장을 군부대 무단이동을 이유로 숙청한데 이어 고모부인 장성택을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를 이유로 처형하면서 전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백두혈통의 적장자이자 북한의 국부(國父)인 할아버지 김일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이복형에 대한 김정은의 콤플렉스로 인해 김정남을 어린시절부터 살펴주면서 쌓았던 유대관계도 장성택의 숙청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잠재적 대체자 혹은 후보자로 거론되는 김정남의 존재가 가져온 불안감이 피의 숙청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자신의 권력에 단 1%의 위협도 없애기 위해 김정은은 친인척의 정치적 생명 뿐만 아니라 물리적 생명의 싹까지 자른 것으로 보인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chung.yeonggy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