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군사전략은 김일성의 계급투쟁과 민족해방전쟁관에서 출발한다.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혁명전쟁론을 전개하였으며 6·25전쟁도 '조국해방전쟁', '정의의 전쟁'이라고 주장하였다.

초기에는 항일 유격전 경험을 바탕으로 속공기동 및 포위섬멸전략을 주내용으로 하는 소련군의 군사전략을 모방하였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 6·25전쟁경험을 응용하여 현대전과 혁명전의 배합이라는 기본전략전술을 설정하였다.

1950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회의에서 김일성은 6·25전쟁 실패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한반도 실정에 맞는 새로운 전략적 과제를 제시했는데 이것이 오늘까지 북한 군사전략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때 제시된 전략적 과제중 북한의 군사전략에 반영된 것들로는 1)정규전에서는 적의 주력을 포위하여 이를 완전 격멸 2) 비정규전 부대는 적 주진지 배후 기습 및 후방지역에서 유격적 감행 3) 점령지역 경계를 위한 기동타격부대의 준비 4) 전선 증원을 위한 전 작전의 전개 6) 각급 지휘관의 지휘통솔능력 제고 7) 강인한 정신전력 보유 8) 전쟁물자 비축 및 원활한 보급 등이다.

1958년 중국 인민해방군 철수이전까지는 중국군과 인민군의 연합작전을 전제로 한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있었으나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비로서 인민군의 독자적인 전략을 확립하였다.

김일성은 1969년 1월 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전원회의 연설에서 조국해방전쟁의 경험을 되풀이하면서 전쟁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현대전과 유격전을 배합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고 방어전과 정규부대·유격부대의 배합작전, 소부대와 대부대의 필요성, 경보병부대 조직돠 무기의 경량화, 곡사포와 저속비행기의 중요성, 산악전의 중시 등을 강조하였다.

또한 김일성은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산과 강하천이 많고 해안선이 긴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조건을 잘 리용하여 산악전과 야간전추를 행하며 대부대작전과 소부대작전, 정규전과 유격전을 옳게 배합한다면 설령 최신 기술로 무장한 적일지라도 얼마든지 섬멸할 수 있다. 조국해방전쟁 경험과 오늘의 월남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군사전략전술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김일성의 군사전략을 종합적으로 표현한 것이 1971년 인민군 창건 23주년 기념보고대회에서의 군총정치국장 한익수의 보고이다. 한익수는 이 보고에서 "집중과 분산, 적극적 방어와 배후교란의 배합, 대소부대활동의 결합, 정규전과 유격전의 배합, 즉시적 반격전과 연속적 타격전, 적 배후의 제2전선 형성, 유격전 저격수 및 유동포 활동, 비행기·탱크사냥 운동 등 김일성의 전략전술법은 현대전과 혁명전쟁의 합법칙성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이러한 군사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전격전과 유생역량(有生力量) 말살, 정치사상의식 고취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군이 공격이나 후퇴시 가급적 인명을 살상시키는 방향으로 작전개념을 세우는 것은 인명을 혁명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공산주의 혁명관에 따라 소련군의 철저한 인·마 살상전술을 교리로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사전략전술은 우리 사회의 혼란과 주한미군 철수 등 정치·군사적으로 북한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는 결정적 시기 도래시 기습 및 전후방 동시공격으로 초전부터 대혼란을 조성하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차·장갑차·자주포로 장비된 기동부대를 종심 깊숙히 돌진시킴으로써 미군의 증원 이전에 전 남한을 석권한다는 단기 속전속결전략으로 정리할 수 있다.